우리나라에서 한 해 가장 많이 배출되는 폐기물은 무엇일까요? 정답은 건설폐기물입니다. 환경부에 따르면 2020년 전체 폐기물의 44.2%(8,644만 톤)가 건설폐기물이었지요. 생활계폐기물(2,254만 톤)의 약 4배입니다.
건설폐기물은 전 세계적인 문제입니다. 건설 산업에서 나오는 쓰레기는 전 세계 폐기물의 3분의 1에 달합니다. 이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은 전 세계 배출량의 40%나 되죠. 시멘트 등 건설자재를 만드는 과정에서 온실가스가 발생하는 데다 이를 폐기하고 소각하는 데도 이산화탄소 등이 배출되기 때문입니다. 건설 관련 배출량은 항공산업의 배출량(약 3%)보다 훨씬 많습니다.
새 집을 짓기 위해 건설 원자재를 소비하고 폐기할수록 지구는 더욱더 기후위기로 치닫게 됩니다. 하지만 건설 자재를 재활용해 집을 짓는다면 어떨까요?
덴마크 코펜하겐의 아파트인 리소스로우(ResourceRow)는 바로 이 질문을 현실로 만든 곳입니다.
지난 7월 코펜하겐의 남쪽 외곽에 있는 외어스태드(Ørestad)라는 동네를 방문했습니다. 2004년부터 지어진 신도시라 새로 지어진 예쁜 아파트들이 많았는데요.
리소스로우는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었습니다. 다양한 색깔의 벽돌이 켜켜이 쌓여 조화를 이루고 있었거든요. 안으로 들어가니 입주민들을 위한 정원이 있었는데요. 테라스와 텃밭, 공용 온실 등이 어우러져 마치 전원주택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2020년 지어진 이 신축 아파트는 사실 모두 재사용 벽돌로 만들어졌습니다. 벽돌 색이 여러 가지인 이유는 덴마크 전역의 오래된 학교나 빌딩에서 공수해왔기 때문입니다. 일부 벽돌은 덴마크의 유명 맥주 회사인 칼스버그의 옛 양조장 벽에서 가져왔다고 해요.
창문에 사용된 유리 역시 재활용 유리입니다. 덴마크 정부가 최근 건물 에너지 효율 기준을 높이면서 많은 건물이 기존의 낡은 유리창을 새것으로 교체하고 있는데요. 이로 인해 버려진 유리창을 재가공해 튼튼한 새 유리창으로 다시 만든 거죠. 정원의 벤치나 덱도 지하철 건설현장에서 쓰고 남은 나무로 만들었고요.
이 중에서도 주인공은 단연 아파트 한가운데 놓인 다리입니다. 인근 공장에 설치돼있던 걸 원래 모습 그대로 떼어서 옮겨놨거든요. 그야말로 완전한 재사용인 거죠.
리소스로우를 설계하고 시공한 레네어 그룹(Lendager Group)에 따르면, 이 92가구짜리 아파트를 만드는 데 463톤의 건설폐기물이 사용됐습니다. 사용된 자재 중 약 10%에 달하는데요. 이 정도 재활용ㆍ재사용만으로도 새로운 자재만 사용하는 것에 비해 탄소배출량을 29% 줄일 수 있다고 합니다. 여기에 태양광 패널과 수열을 이용한 히트펌프 등을 설치해 친환경 에너지도 사용하고 있죠.
레네어 그룹은 이처럼 재활용 자재를 사용해 건축물을 짓는다는 목표로 2015년 설립됐습니다. 건축 연한이 다 돼서 또는 단지 새 건축물을 짓기 위해서 부숴지고 버려지는 건물이 많은데, 이를 다시 사용하면 폐기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물론 기후위기 대응에도 도움이 될 거니까요.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레네어 그룹의 아이디어는 다소 급진적인 것으로 여겨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덴마크는 물론 독일에까지 진출해 아파트ㆍ은행ㆍ상업시설 등 14개의 건축물을 지었다고 합니다.
리소스로우를 비롯해 레네어 그룹이 이 주변에 지은 주택들은 다른 아파트보다 더 빨리 임차인을 모집했다고 합니다. 기자와 함께 아파트를 둘러본 디테 뤼스거 비드 이사는 “재활용 건축물만이 갖고 있는 이야기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입주를 원했다”고 말합니다. 환경친화적인 집에서 산다는 건 흔치 않은 기회니까요.
더욱이 리소스로우에 사용된 벽돌의 경우 오래된 것은 무려 1960년대 건축물에서 가져왔는데요. 덴마크 건축의 유산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디자인도 인기에 한몫했다고 하네요.
하지만 단지 의미가 있다는 이유로 집을 선택하진 않겠죠. 입주자들의 눈을 끌었던 또 다른 이유는 가격에 있습니다. 디테 이사의 설명에 따르면 “레네어 그룹이 지은 집들은 다른 아파트와 똑같은 가격에 더 질 좋은 자재를 사용했다”는 거죠.
재활용 자재를 썼다면서 왜 질이 좋다는 걸까요? 리소스로우에서 약 3분 거리에 있는 업사이클 스튜디오라는 타운하우스를 예로 들어볼게요.
이곳은 콘크리트와 나무를 재활용해서 만들었는데요. 특히 마룻바닥을 진짜 원목으로 만들었죠. 하지만 새 자재를 사용한다면 같은 예산으론 플라스틱을 사용한 라미네이트 바닥재를 선택해야 했을 겁니다. 재사용이긴 해도 결국 보다 저렴하게 자연소재 마루를 설치한 거죠.
업사이클 스튜디오는 전체 건축자재의 약 69%(914톤)를 재활용 자재로 채웠고, 이로써 탄소배출량을 약 45% 줄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건축폐기물을 재활용해서 쓰면 혹시 건강에 악영향이 있진 않을까요? 덴마크에서도 이 같은 우려의 시선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레네어 그룹은 더욱더 건강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건축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내부 인테리어를 할 때는 페인트나 기타 화학물질을 최대한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네요.
재활용 건축물을 짓는 것은 사실 쉽지 않은 작업입니다. 건축물을 부수면 당연히 버려 왔던 기존의 관행을 깨는 것부터가 도전이었다고 해요. 폐기된 벽돌의 접합방식이나 상태 등을 점검해 쓸 만한지 확인해야 하고, 또 재활용 공정 비용 때문에 건축 비용이 높아지지 않도록 해야 하니까요.
레네어 그룹은 설립 초반에는 재활용 자재를 공수하기 위한 연결망 구축에 오래 공을 들였다고 합니다. 또 자재 운반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동선을 꼼꼼히 설계하기도 했고요. 디테 이사는 “오늘의 폐기물로 내일의 세계를 디자인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말했습니다.
지금도 우리나라 곳곳에서 건축폐기물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 쓰레기들이 매립지로 향하는 대신 재활용 콘크리트와 유리창으로 태어나 신축 아파트가 되는 모습은 아직 쉽게 상상이 안 됩니다. 하지만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선 그동안 시도해보지 못한 새로운 해결책에 도전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이 기사는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