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역할의 장벽을 뛰어넘은 반페미니스트

입력
2022.09.05 04:30
26면
9.5 필리스 슐래플라이

필리스 슐래플라이(Phyllis Schlafly, 1924.8.15~ 2016.9.5)는 20세기 미국 보수의 퍼스트레이디라 불린 여성이다. 그는 직업 정치인은 아니었지만, 1960년대 이래 평생 공화당 정책과 강령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며, 미국 보수의 기반을 다진 인물로 평가된다.

맹렬한 반페미니스트였던 그는 미국 페미니즘 진영이 지금도 한스럽게 여기는 1970년대 헌법 평등권 수정안(ERA)을 부결시키는 데도 앞장섰다. 1972년의 ‘STOP ERA’라는 조직이 그의 작품이었다. ‘STOP’은 ‘Stop Take Our Privileges’의 약자로, 그는 남녀 평등권 조항이 여성의 특권을 박탈하려는 시도라고 주장했다. 그가 말한 특권이란 베트남전쟁 징병 면제 특권, 아내로서 누리는 의존적 특권, 이혼 위자료 특권, 자녀 양육권 등이었다.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서 기계공 겸 세일즈맨 아버지와 전업주부 어머니의 딸로 태어난 그는 지역 가톨릭 고교를 우등 졸업하고 워싱턴대를 거쳐 1945년 하버드대(래드클리프)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대공황기 아버지의 잦은 실직으로 어머니가 미술관 사서, 임시직 교사로 일하며 가족을 부양하는 것을 보면서 주부, 어머니의 역할과 가족의 가치를 배웠다고 말하곤 했다.

그는 워싱턴D.C의 한 보수 싱크탱크에 취업하며 보수 정치 캠페인을 시작했다. 그는 반공주의자였고, 냉전주의자였고, 자유무역주의자였고, 반이민론자였고, 반페미니스트였다.

1949년 변호사(Fred Schlafly)와 결혼해 6남매를 뒀고, 26권의 책을 집필, 편집했으며, 수시로 라디오나 TV에 출연하며, 칼럼도 썼다. 1975년에는 남편 반대를 무릅쓰고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 로스쿨에 진학해 1978년 학위를 받았고, 주 변호사시험에도 합격했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주장과 달리, 젠더 역할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삶을 개척한 페미니스트적 여성이었다.

최윤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