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 카메라를 제치고 늘어선 스마트폰. 전·현직 대통령 자택과 사저 앞에서 매일 시위하며 후원금을 유도하는 사람들. 기성 언론보다 유튜브발 뉴스를 더욱 신뢰한다며 슈퍼챗을 쏘는 구독자들.
모두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정치 유튜브의 단면이다. 정치 과잉 사회에서 정치 유튜브를 바라보는 시각은 복잡하다. 정치 참여의 폭을 넓히고 새로운 평론 문화를 만들어냈다는 평가도 있지만, 극단적 진영논리와 가짜뉴스의 온상이 됐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정치 유튜브의 흥행 배경과 영향력을 진단하기 위해, 학계와 정치권에서 활동 중인 전문가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와 황근 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김성회 씽크와이 정치연구소장과 장성철 공감과 논쟁 정책센터 소장이 이달 19일과 23일 한국일보 본사에서 정치 유튜브를 주제로 열린 좌담회에 참석했다. 이종명 경북대 사회과학연구원 연구원이 진행을 맡았다.
전문가 4인은 공통적으로 한국 사회의 정치 양극화와 정치 과잉 현상을 '정치 유튜브 흥행'의 출발점으로 꼽았다. 최진봉 교수는 "한국은 실질적으로 중도가 거의 없고, 모든 사안이 정치로 환원되는 나라"라며 "정치 과잉 사회에선 정치라는 소재 자체가 돈이 된다"고 진단했다. 황근 교수는 "노무현 정권 때 동사무소마다 미디어센터를 만들어 1인 미디어를 적극 양성했던 것도 한몫했다"며 "유튜브에 익숙한 인구 자체가 많다"고 짚었다.
정치 유튜브가 자극적이고 편향적 측면이 강하지만, 기성 언론이 신뢰를 잃으면서 유튜브가 대안으로 떠올랐다는 지적도 나왔다. 황 교수는 "정치 유튜브의 편향성을 비판하지만, 기성 언론이 독과점에 길들여져 품질 개선을 등한시했고 정파성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며 "방송사 성향에 맞지 않아 출연할 수 없었던 평론가들이 유튜브로 넘어가기도 했다"고 분석했다. 김성회 소장 역시 "언론의 정파성에 반발한 정치권 인사들이 팟캐스트로 시작해 유튜브까지 활동 영역을 넓혔다"고 덧붙였다.
정치 유튜브 시장에서 유튜버들이 돈을 버는 방식은 정해져 있다. 새겨들을 만한 건전한 비평도 있지만,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제기하거나 특정 진영 입맛에 맞는 주장을 일삼는 유튜버들이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슈퍼챗과 개인 계좌 후원이 수익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유튜브 시장에선 '자극'과 '편향'이 지지자들을 만족시키기 위한 공식으로 굳어졌다"고 입을 모았다.
장성철 소장은 "유튜브에선 나와 다른 진영만 적이 되는 게 아니라, 같은 진영의 유튜버도 동일한 시장을 두고 경쟁하는 상대"라며 "지지자들 입맛에 맞게 더 자극적인 주장을 빨리 내놓아야 생존에 유리하다"고 진단했다. 황 교수도 "구독자 50만 명이 수익을 담보하는 조건이라면, 일단 극단적 주장을 해서라도 50만 명을 빨리 모아야 한다"며 "외연을 넓히겠다고 논조를 약하게 하면 시장에서 퇴출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정치 유튜버들의 수익 창출 전략은 기본적으로 편향성을 극대화하는 것이지만, 때로는 순식간에 편을 바꾸는 게 이득이 될 때도 있다. 최 교수는 "윤석열 대통령 취임 뒤 보수 진영이 갈수록 분화되자, 최근 극우 유튜버였던 A씨는 진보 성향 유튜버 B씨와 함께 다니며 방송을 한다"며 "그런데 보수 유튜버들이 A씨를 욕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거긴 장사 잘 되냐'고 물어본다고 한다. 결국 유튜버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수익성"이라고 밝혔다.
최근 본보가 이종명 연구원과 진행한 실험 결과에 따르면, 뉴스에서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 유튜브 채널이 출처로 표기됐다면, 사람들은 한 번도 검증된 적이 없는 가짜뉴스라도 신뢰하는 경향이 강했다. 좌담회 참석자들은 이런 현상을 '확증편향의 극단화'로 평가했다. 장성철 소장은 "매번 같은 성향의 유튜브 콘텐츠만 접하게 되면 특정 주장뿐 아니라 채널 자체를 맹신하게 된다"며 "출처만 빌린 가상의 뉴스까지 그대로 믿을 정도라면 검증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맹목적 지지자들이 많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튜브 검색 및 추천 알고리즘이 이 같은 현상을 더욱 심화한다는 지적도 빠지지 않았다. 김성회 소장은 "포털 사이트에선 대체로 검색 정확도와 신뢰도를 중요한 기준으로 삼지만, 유튜브에선 이용자가 1분 이상 머무를 만한 영상을 추천한다"며 "광고까지 오래 시청할 수 있도록 하려면 이용자와 비슷한 주장을 반복하는 채널들로 선택지를 좁힐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치 유튜브에서 처음으로 제기된 의혹이 정치권에서 핵심 쟁점으로 다뤄지거나, 일정 부분 사실로 밝혀지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 같은 현상만으로 정치 유튜브의 공신력을 섣불리 재단해선 안 된다는 의견이 많았다.
최진봉 교수는 "많은 제보자는 보도 방식과 여론 조성 단계까지 진영 이익에 맞추고 싶어하는데, 유튜브에선 이를 달성하기 쉽다"며 "따라서 정치권 인맥이 잘 형성된 채널에서 뉴스거리가 나오는 것을 긍정적으로만 평가할 순 없다"고 지적했다. 김 소장 역시 "유튜브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의도를 가진 제보자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이슈를 흘릴 수 있게 됐다"고 진단했다.
기성 언론이 유튜브발 의혹 검증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야 할지에 대해선 의견이 갈렸다. 김 소장은 "충분히 취재 아이템이 될 것 같은 내용도 (기성 언론이) 낙종했다 싶어서 뭉개는 경우도 종종 있다"며 "유튜브에 환호하는 사람들도 마음 한편엔 팩트체크에 대한 찝찝함이 있는 만큼 언론이 그걸 풀어주는 방식으로 신뢰도를 쌓아갔으면 좋겠다"고 제언했다. 최 교수도 "누군가의 명예를 훼손할 정도로 사실처럼 퍼진 이야기는 언론이 적극 취재해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며 "이번 대선 국면에선 그런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유튜브발 의혹의 확산 속도를 기성 언론이 따라잡을 수 없을뿐더러, 검증에 대한 당위성이 떨어진다는 견해도 나왔다. 장성철 소장은 "언론의 기본 역할이 의혹에 대한 팩트체크지만, 유튜브에서 나오는 주장을 전부 따라갈 수 있을지에 대해선 회의적"이라며 "유튜브는 제보만 받고 빨리 내보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지만 언론사는 기사 가치에 대한 판단부터 검증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장 소장은 그러면서 "가장 허위사실을 많이 보도한 유튜브 채널을 정기적으로 보도하는 등 사후적으로 견제와 감시 기능을 할 필요는 있다"고 제언했다.
영향력이 커진 정치 유튜브를 어느 선까지 규제해야 할지도 고민거리다. 별도 규제 필요성에 대해선 전문가들의 의견이 갈렸지만,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고 단점만 걸러내기 위해선 세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다.
황근 교수는 "내용에 대한 일괄 규제는 당위성을 떠나 현행법상 불가하다"며 "유튜브가 통신업으로 분류되기 때문인데, 전송 수단을 규제 기준으로 삼는 현행법을 시대에 맞게 영향력 기준으로 바꿔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성회 소장은 "지금도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죄 등을 적용해 형사처벌이 가능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도 있기에 별도 규제는 반대한다"며 "다만 플랫폼 사업자에게 관리 책임을 묻는 방안은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최 교수도 "자유로운 정치적 의사표현이라는 유튜브의 장점이 퇴색되지 않도록 가능한 한 규제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생산적 논의를 이끌어가야 할 국회 내 움직임은 지지부진하다. 장 소장은 "정치인들이 스스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거나 유튜브에 자주 출연하면서 상대 진영을 공격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를 외면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 기사는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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