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마이크로소프트(MS)에서 내놓은 가정용 게임기(콘솔) '엑스박스'를 구입한 사람으로부터 온라인 게임을 이용하기 위해 게임패스를 칠레에서 샀다는 얘기를 들었다. 게임패스란 엑스박스에서 각종 게임을 온라인으로 이용하기 위해 다달이 돈을 내고 구입하는 이용권이다. 쉽게 말해 온라인 게임을 위한 월 이용료다.
왜 게임패스를 한국이 아닌 칠레에서 샀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보다 칠레의 게임패스 가격이 싸기 때문이다. MS를 비롯해 전 세계를 상대로 제품과 서비스를 판매하는 다국적 기업들은 각 지역별로 환율과 경제사정 등을 감안해 가격을 다르게 적용한다. 그래서 한국보다 칠레의 게임패스 가격이 싸다. 한국에서는 월 1만6,000원을 웃도는데 칠레는 월 3,000원꼴이다.
포털 검색 사이트에서 뒤져보면 이 차이를 노려 해외 게임패스를 판매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게임업계에 따르면 중국 등 해외 판매업자들이 조직적으로 해외 게임패스 이용권을 대량으로 구매해 국내에서 인터넷을 통해 판매한다.
그렇다 보니 MS는 물론이고 엑스박스의 국내 유통을 담당하는 SK텔레콤도 타격을 입는다. MS에서는 해외 게임패스를 구입해 사용하다가 발견되면 계정을 차단해 버리지만 역부족이다.
이는 비단 MS만의 문제는 아니다. 소위 인터넷으로 다달이 이용료를 받는 구독경제 서비스 업체들이 모두 직면하고 있는 공통적인 문제다. 해외의 인터넷 실시간 음악 서비스(스트리밍) 업체인 스포티파이도 일부 국가의 이용료가 국내보다 싸다. 유명한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OTT) 업체인 미국 넷플릭스도 국내보다 저렴한 인도 계정의 이용권이 한동안 어둠의 경로를 통해 불티나게 팔렸다.
물론 이용자들도 저렴하게 이용하려면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계정을 차단당할 위험은 물론이고 가상사설망(VPN)을 이용해 우회 접속하는 등 절차와 과정이 번거롭고 복잡하다. 그럼에도 비용을 아낄 수 있어서 적지 않은 이용자들이 불편을 감내한다.
어찌 보면 이는 구독경제의 허점이요, 한계일 수 있다. 그렇다고 각국의 환율과 소득수준이 다른데 전 세계 이용료를 동일하게 유지할 수도 없다. 그런 방식으로는 전 세계에서 많은 가입자를 모으기 힘들다.
일각에서는 일부 업체들이 구독경제의 구멍을 일부러 방치한다는 주장도 한다. 초기에 가입자 확대를 위해 이 같은 편법을 모른 채 눈감아 주었다가 어느 정도 가입자가 확대되면 단도리를 한다는 주장이다.
이는 세계적인 정보기술(IT) 업체들이 자주 썼던 방법이다. 이용자 확대를 위해 초기에 소프트웨어 불법 복제 등을 방치했다가 이용자가 늘어나면 단속을 강화하는 식이다. 이렇게 되면 사용하고 있는 소프트웨어에 익숙해진 이용자들이 다른 소프트웨어로 갈아타기 힘들어 유료 구매를 할 수밖에 없다.
결국 구독경제의 구멍을 최소화하려면 업체들이 이용료를 적극적으로 탄력 조정해야 한다. 가격에는 가격으로 맞서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수많은 나라의 이용료를 자주 바꾼다는 것이 업체 입장에서는 힘든 일이지만 편법과의 싸움에서 이기려면 환율과 경제상황에 맞춰 빠르게 요금을 조정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아울러 할인행사 등 다양한 프로모션의 병행도 필요하다.
그런데 최근 환율이 오르면서 일부 해외 온라인 서비스들의 요금 인상 가능성이 솔솔 흘러나오고 있다. 시장과 거꾸로 가는 셈이다. 업체들의 사정상 요금 인상이 어쩔 수 없겠지만 이렇게 되면 편법 판매자들과의 싸움은 더더욱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