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기업의 모래주머니'라고 지적하며 개선을 약속한 각종 규제 중 환경규제가 첫 수술대에 오른다. 기업의 부담을 가중하는 규제를 현실화하고 차등 적용해 비효율을 없애겠다는 목적이다. 한편에서는 환경이나 국민 건강에 꼭 필요한 규제까지 없애버리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한화진 환경부 장관은 26일 대구 성서산업단지에서 열린 제1회 규제혁신전략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환경규제 혁신 방안'을 보고했다. 주요 내용은 △금지된 것 말고 다 허용하는 '열린(negative)' 규제 △위험에 비례하는 차등적 규제 △쌍방향 소통·협의형 규제 등이다.
핵심은 규제를 유연화해 민간의 혁신을 유도하는 것이다. 한 장관은 "이번 혁신은 '규제 완화'가 아닌 규제의 품질을 높이는 과정"이라며 "너무 경직돼 있어 민간의 창의력을 이끌어내기 어려운 각종 규제를 합리화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기존 '닫힌(positive) 규제'를 열린 규제로 전환하는 것은 폐기물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 커피찌꺼기가 한 사례다. 환경부는 "연간 15만 톤이 배출되는 커피찌꺼기는 다양한 폐기물 규제를 받다 올해 3월 요건이 간소화돼 플라스틱, 화장품 원료, 바이오 연료 등으로 재활용할 수 있게 됐다"며 "이런 규제 개선으로 연 2,114억 원의 폐기물 처리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2012년 구미 불산사고 이후 제정된 '화학물질등록평가법'(화평법)과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은 산업계 부담을 고려해 위험도에 따라 차등 적용하기로 했다. 고위험 물질을 다루는 기업과 저위험 물질을 다루는 곳에 똑같이 330여 개의 규제가 적용돼 과도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고체 상태의 납을 보관하는 업체는 화학사고 위험성이 낮은 만큼 환기설비 설치 의무 등이 면제된다.
환경영향평가 절차도 간소화한다. 현행 제도는 사업 규모에 따라 모두 평가를 받도록 기계적으로 규정돼 있어 부실하고 형식적으로 운영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한 장관은 "선진국에서 활용되는 스크리닝(환경영향 정도에 따라 평가 대상 여부를 유연성 있게 결정) 제도를 도입할 것"이라며 "전문가 의견을 수렴하고 협의체 등을 통해 평가 대상 여부를 판단할 수 있도록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설명했다. 스크리닝 제도의 경우 법률 개정이 필요한 만큼 환경부는 내년 말까지 법안을 마련해 시행 시기를 구체화할 계획이다.
그러나 규제 혁신 방안에 경영계의 일방적 요구만 반영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화학물질 관련 규제는 기업들이 힘들어하더라도 옳은 방향인데, 환경부 장관이 산업부 장관처럼 말하는 것 같다"며 "가장 핵심적인 풍력, 태양광 관련 재생에너지 분야 규제를 혁신적으로 풀어줘야 하는데 구체적인 내용이 없어 아쉽다"고 밝혔다.
환경영향평가에 도입하는 스크리닝 제도도 우리나라에서는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는 "기존 환경영향평가를 제대로 하고 있다는 가정하에 비효율을 낮추기 위해 스크리닝 제도는 필요하다"면서도 "사업자가 직접 자기 돈을 들여 환경영향평가를 자기 입맛에 맞게 내놓는 현행 시스템 안에서 환경영향평가 부담까지 덜어진다면 기업에 날개를 달아주는 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국가가 주도하는 공공개발도 환경영향평가가 축소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구체적인 시행 시기와 목표가 모호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한 장관은 "세부안에 대해서는 이해당사자와의 소통과 협의를 통해 구체적으로 정할 것"이라며 "특정시기를 못 박기보다 내년 말까지는 전체적인 법률안 골격을 마련하고 이를 기반으로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