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초 틱톡' 보다가 밤 꼴딱, 당신 탓이 아니다

입력
2022.08.25 14:00
14면
김병규 교수, '호모 아딕투스' 출간
최상위 초식자 빅테크 기업들 
빅데이터, 알고리즘 등으로 고객 중독
'메타인지'로 중독 벗어나야
빅테크 부작용에 사회적 논의 필요

‘딱 한 편만 봐야지’라며 유튜브를 켰다가 밤을 꼬박 새우거나, ‘생필품만 사겠다’고 다짐한 쿠팡에서 가산을 탕진해도 너무 슬퍼하지 말자. 빅테크(거대 정보기업) 기업은 쾌감에 취약한 현대인의 뇌를 이용해 지갑을 터는 데 선수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의 ‘좋아요’ 버튼은 또 어떤가. 칭찬 욕구를 자극하는 디지털 마약이다. 지금까지 디지털 중독 논의는 ‘개인 자제력’ 측면에서 다뤄져 왔다. 사실 ‘기업 통제력’이 주제가 되야 마땅하다.

김병규(47) 연세대 교수의 신작, ‘호모 아딕투스’(Homo addictusㆍ중독된 인간)가 딱 그런 책이다. 빅테크 기업이 현대인을 중독시켜 부를 쌓아 올리는 과정을 낱낱이 분석했다. 지난 22일 만난 김 교수는 “빅테크 기업에 조종당하는 삶을 완전히 벗어나기 어려워도, 최소한 우리 자신에게 지금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고 했다.

과거 기업은 제품 생산과 판매로 먹고살았다. 현대 기업들은 중독으로 돈을 번다. 고객들이 스마트폰에서 지내는 시간이 늘수록 광고 수익과 제품 판매 수수료는 불어난다. 중독경제의 시대, 기업 목표는 ‘판매’가 아닌, ‘중독’이다. “중독경제가 나쁘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소비자의 허점을 파고들어 수익을 창출하는 건 자연스러운 기업 활동이죠. 다만 사람들이 빅테크에 중독되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게 문제입니다.”

빅테크 기업은 중독에 취약하게 설계된 인간의 뇌를 교묘히 이용한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가 아닌 ‘계속 보게 될’ 콘텐츠를 추천한다. ‘지구가 평평하다’(플랫 어스)고 믿는 이들이 갑자기 늘어난 배경에 유튜브 알고리즘이 있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 깜짝 할인 혜택을 받은 후 쇼핑 애플리케이션을 수시로 켜보는 버릇이 생겼다면, 예상 못 한 보상에 쾌감을 느끼는 심리 때문이다. 디지털 기업이 ‘포인트 결제’를 유도하는 건 ‘신용카드 결제’보다 뇌가 느끼는 고통이 덜하기 때문.

기업은 네 단계로 중독을 디자인한다. 즐거움을 맛보게 하는 시핑, 중독 욕구를 갖게 하는 후킹, 현실에서 벗어나 디지털에 빠져들게 하는 소킹, 디지털에서 빠져나간 이들을 다시 불러들이는 인터셉팅. 우선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시핑 기회를 주고(가입 혜택), 흥미를 느낀 이들을 후킹한 다음(좋아요 버튼), 완전히 소킹 상태로 만든 후(추천 동영상), 인터셉팅해서 디지털 세계로 돌아오게 한다(깜짝 할인).

중독경제를 이용하면 발전하고 뒤처지면 도태된다. 2020년 포브스 선정 브랜드 가치 상위 5개 기업은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페이스북 순으로 모두 빅테크 기업이었다. 유통업체 쿠팡이 영화와 드라마를 제공하는 이유도 고객을 묶어두기 위한 전략이다. 김 교수는 “중독경제는 시작된 지 2, 3년 정도로 이제 초입 단계”라며 “중독성이 훨씬 강한 메타버스(가상세계)는 중독경제의 ‘끝판왕’이 될 것”이라고 했다.

온갖 중독이 넘치는 세상, 어떻게 ‘나’를 지킬 수 있나. 그는 “테크 기업이 제공하는 것들에 의심을 하고, 내게 미치는 영향을 신중하게 살펴야 한다”고 했다.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한걸음 떨어져 바라보는 ‘메타인지’ 능력이 핵심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 철학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얘기. 앱 사용시간 제한하기, 소셜미디어에서 벗어나기, 미뤘다 다시 고민하기 등의 꿀팁도 제안했다.

기업이라면 중독경제의 파도에 올라타야 한다.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인 빅테크 틈에서 살아남을 방법, 있다. 새로운 중독 기술을 만드는 ‘뉴메카닉’, 아직 중독경제에 포섭되지 않은 세대를 공략하는 ‘뉴에그’ 등이다. 15초 동영상으로 유튜브 아성을 뚫은 ‘틱톡’은 뉴메카닉의 대표 사례. ‘스냅챗’은 우정을 확인할 수 있는 기능을 담은 메신저로 미국 10대를 사로잡았다.

“거대 기업을 견제하는 연구에 관심이 많다”는 그는 골리앗보다 다윗 편에 선 경영학자다. 펜실베이니아대 와튼경영대에서 박사를 받고, 서던캘리포니아대(USC) 마샬경영대 교수를 지낸 마케팅 분야의 세계적 전문가. 그 자신도 “아빠, 내게도 관심을 가져줘”라는 초등학생 아이의 핀잔을 듣고 뉴스 중독에서 벗어났다. “유럽과 미국은 인권을 중시하는 문화가 있어 빅테크의 개인정보 활용 등 인권 문제와 관련된 연구를 하고 법을 만들죠. 우리는 기업의 성장에 조금 더 방점이 찍혀있는데, 경제적으로 성장한 만큼 인권침해, 불공정 경쟁 등에 대해 심사숙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지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