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방역 늘공'의 은퇴

입력
2022.08.24 18: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앤서니 파우치 미국 국립 알레르기·감염병 연구소(NIAID) 소장이 연말 50년 공직 생활을 마무리한다. 코넬대 의대 수석 졸업생으로 1972년 감염병 연구 및 백신·치료제 개발 기관인 NIAID에 들어간 그는 레이건 정부 때인 1984년부터 소장을 맡아 에이즈, 사스, 조류독감, 돼지독감, 지카, 에볼라 등 주요 감염병 유행에 대처했다. 임기 마지막 3년은 스스로도 "역사상 유례없는 사태"로 규정한 코로나19 팬데믹 대응을 주도하며 유종의 미를 거두는 중이다.

□ 미국의 코로나 초기 대응은 미흡했다. 2020년 1월 첫 확진자 발생 후 검사 체계를 갖추는 데만 두 달 가까이 걸렸고, 국가적 위기 선언과 사회적 거리 두기도 그제야 이뤄졌다. 한국의 질병관리청 격인 질병통제예방센터(CDC)와 트럼프 백악관의 역량 부족 탓이 컸다. 중심을 잡은 이가 파우치였다. 앞장서 국민에게 현황과 정부 대책을 설명했고 방역을 당부했다. 백악관 브리핑에선 말라리아 치료제가 코로나 특효약이 될 거라 떠벌리는 대통령에게 면박을 줬다. 베테랑 '늘공(직업공무원)'의 관록을 보여준 장면이었지만 해임과 테러 위협이 따르기도 했다.

□ 1980년대 에이즈 유행 사태 때도 전면에 나섰다. 감염면역학 연구로 각광받던 와중에 주변 만류를 물리치고 '동성애 역병'으로 터부시되던 에이즈 치료법 연구에 투신했다. 절박한 환자들은 신약 승인에 소극적이라며 식품의약국(FDA)을 성토했고 NIAID도 덩달아 표적이 됐다. 파우치는 피하지 않고 환자 속으로 뛰어들어 고충을 들었고, 긴급 상황에선 신약의 안전성만 확인되면 효능 검증 절차를 건너뛰고 임상실험을 할 수 있도록 제도 변화를 이끌어냈다. 그를 "살인자"라 부르던 환자단체 리더는 "참된 영웅"이라고 칭송했다.

□ 그는 어릴 적부터 정력적이고 리더십이 뛰어나다는 소리를 들었다. 야구를 좋아해 고교 시절 주장을 맡았지만 신장(170㎝) 한계를 생각해 미련 없이 진로를 바꿨다. 언론 인터뷰에 적극 응하는 면모엔 대중 소통 임무에 충실하다는 칭찬과 함께 '나서길 좋아한다'는 구설도 따른다. 파우치는 22일 성명에서 "과학 지도자 멘토링으로 미래 감염병 위협 대응에 도움이 되고 싶다"고 은퇴 후의 계획을 밝혔다.

이훈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