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가 비상대책위원회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과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을 군사정권 시절 '신군부'에 빗댄 내용의 탄원서를 제출한 것으로 23일 확인됐다. 법원에 가처분 인용을 호소하기 위해 비대위 전환 과정의 비민주성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 전 대표는 지난 19일 법원에 제출한 탄원서에서 "지금의 상황이 사법부에 의해 바로잡아지지 않는다면 이 사태를 주도한 절대자는 비상계엄 확대에 나섰던 신군부처럼 비상상황에 대한 선포권을 더욱 적극 행사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 비상선포권은 당에 어떤 지도부가 들어온다 하더라도 지울 수 없는 위협으로 남아 정당을 지배할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과 윤핵관(윤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들이 '당의 비상상황'을 구실로 비대위 전환을 주도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가처분 신청이 법원에서 인용되지 않을 경우의 상황을 '신군부 체제'에 비유했다.
가처분 결정 기각 가능성을 언급한 김기현 의원과 주호영 비대위원장을 실명 비판하면서 이들의 배후에 윤 대통령이 있다는 취지의 주장을 폈다. 이 전 대표는 "매사에 오히려 과도하게 신중한 모습을 보이며 복지부동하는 것을 신조로 삼아온 김기현·주호영 전 원내대표 등의 인물이 이번 가처분 신청을 두고 법원의 권위에 도전하는 수준의 자신감을 보인다"고 지적했다. 또 "법원의 판단으로 바로잡아진다고 하더라도 면을 상하지 않도록 어떤 절대자가 그들에게 면책특권을 부여한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 측의 회유 사실도 폭로했다. 그는 "6월 지방선거가 끝나고 '절대자와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당대표직에서 12월까지 물러나면 윤리위원회 징계와 수사 절차를 잘 정리하고 대통령 특사로 몇 군데 다녀올 수 있도록 중재하겠다는 제안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탄원서 내용이 언론 보도를 통해 공개되자, 이 전 대표는 페이스북에 "'도 넘었다, 격앙' 기사를 내려고, (윤핵관이) 법원에 낸 자필 편지를 유출하고 '셀프 격앙'까지 했다"고 조롱했다. 당을 장악하고 있는 윤핵관 측이 고의로 유출했다는 주장이다.
주 위원장은 이에 대해 "본인 생각으로 전부 재단하는 이 전 대표가 독재자가 된 것 같다"며 "법률지원단 검토에 비춰보니 '업무 절차에 하자가 없고, 기각이 될 걸로 믿는다'(고 언론에 답했는데), 이게 무슨 권위 도전이냐"고 반문했다. 김 의원도 "상상은 자유지만, 그 상상이 지나치면 망상이 되어 자신을 파괴한다"고 비판했다.
당 원로들도 이 전 대표를 둘러싼 내홍에 우려를 표했다. 주 위원장 등 지도부는 이날 신영균 전 의원, 황우여 전 대표 등 상임고문단 10여 명과 오찬을 가졌다. 박정하 비대위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국민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당의 분란이고, 이 전 대표와 관련해서는 '복잡할 때는 원칙대로 하라'는 얘기가 있었다"라고 전했다.
한편, 대통령실은 대응을 삼갔다. 김은혜 홍보수석은 브리핑에서 '이준석 전 대표 탄원서에 윤 대통령을 공격하는 단어들이 있다'는 질문에 "제가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것 같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