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혐오 없애는 파수꾼"... 유튜브로 '깐부' 된 한중 2030

입력
2022.08.24 10:00
한중 젊은이 3명 의기투합, 유튜브 채널 운영
음식 등 일상 다뤄 호평... 정치적 이슈는 배제
"젊은 세대 온라인 문화교류, 공감대 확산 매개"

“흠... 正能量(정넝량)을 한국말로 뭐라 하죠?”

“좋은 에너지, 긍정 에너지잖아요!”

“아 맞다. 갑자기 생각이 안 나서. 크크.”

지난달 24일 인천 중구의 한 스튜디오. 젊은 남녀 3명이 뭐가 그리 즐거운지 끊임없이 웃고 떠들었다. 알고보니 중국어 ‘正能量’의 한국식 표현을 물어본 사람은 한국인 남성, 이를 한국말로 답해준 이는 중국인 여성이었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지만 3인방의 정체를 알면 놀랄 일도 아니다. 이들은 유튜브 채널 ‘欧巴(우바)Studio_오빠스튜디오’를 운영하는 한국인 남성 김진홍(29)ㆍ백남준(30)씨와 중국인 여성 왕홍우(24)씨다.

오빠스튜디오는 한중 젊은이들의 문화 차이를 극복하고 소통의 장을 넓히자는 취지에서 2019년 문을 열었다. 채널명 우바는 한국어 오빠와 발음이 비슷해 중국에서 남성 한류스타를 친근하게 부르는 표현에서 따왔다.

"유튜브로 뿌리 깊은 편견 허물래요"

오빠스튜디오가 제작하는 영상은 거창하지 않다. 양국의 음악이나 음식, 관광 등 소소한 일상을 다루는데, 오히려 이런 친근함이 먹혀들어 한중 2030세대 사이에서 입소문을 탔다. 양국 유학생들이 패널로 출연하고 영상엔 한국어와 중국어 자막이 함께 달린다. 콘텐츠는 유튜브뿐 아니라 ‘중국판 유튜브’ 빌리빌리에도 올라간다. 오빠스튜디오 구독자는 유튜브 7만 명에 빌리빌리나 도우인(틱톡)까지 합치면 95만 명에 육박한다. 한중 젊은이들을 잇는 ‘문화 가교’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처음 영상 제작을 결심한 이는 김진홍씨다. 2018년 1년간 경험한 중국 산둥대 유학 생활이 계기가 됐다. “우리는 ‘중국인은 대부분 시끄럽고 목소리가 크다’고 생각하죠. 반대로 중국인들은 ‘한국인은 다 성형을 좋아한다’고 오해하더라고요. 제가 겪어보니 다 색안경이고 편견이었습니다.”

김씨는 역시 산둥대를 다니던 백씨와 의기투합했고 2018년 귀국 후 이듬해 오빠스튜디오를 개설했다. 숭실대에서 한중번역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중국인 유학생 왕씨는 올해 운영자로 합류했다. 오빠스튜디오는 민감한 정치적 이슈는 되도록 다루지 않는다. 백씨는 “젊은 세대만이라도 문화 교류에 집중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020년 터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서 오빠스튜디오는 ‘오아시스’ 역할을 하기도 했다. 감염병 확산 초기, 국내에 반중(反中) 정서가 한창일 때 왕씨를 비롯한 중국인 유학생들은 중국 최대 명절인 춘절에도 고향에 못 가고, 비난 여론 탓에 마음고생을 적잖이 했다. 김씨와 백씨는 춘절에 만두를 빚어 마스크와 함께 중국 유학생들에게 전달했고, 이 과정을 담은 영상은 큰 박수를 받았다. 왕씨는 “한국과 중국은 오래전부터 가까운 이웃”이라며 “우리가 만든 영상을 보면서 서로를 미워하는 양국민이 조금씩 줄어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첨단매체 익숙한 젊은 세대... 한중 잇는 '문화 가교'

최근엔 한국 고교생의 중국 유학생활을 담은 브이로그(VLOGㆍ일상을 촬영한 영상 콘텐츠)도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체육복과 비슷한 중국 학교 교복을 입고 수업 중간 따로 낮잠 시간도 갖는 등 한국과 조금 다른 듯하면서도 평범한 중국 학교 생활을 보여준 유튜버 ‘토막이tia’의 영상은 조회수 150만 회를 기록했다. 시청자들은 “드라마나 영화가 아닌 실제 중국 고교 생활을 자세히 보는 건 처음”이라며 신기해 했다.

익숙한 첨단매체를 활용해 한중 간 이질감을 좁히려는 2030세대의 시도는 긍정 평가를 받고 있다. 일방적 반중ㆍ혐중이나 이른바 ‘국뽕’ 유튜브 영상이 넘쳐나는 현실에서 젊은이들 스스로 상대의 문화를 이해하려는 자체가 값지다는 것이다. 하남석 서울시립대 중국어문화학과 교수는 23일 “종종 두 나라 학생들의 토론 내용을 지켜보면 자신의 입장을 180도 바꾸진 않아도 차츰 공감대가 생긴다”며 “교류의 기회가 많아져야 가능한 일인데,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유튜브가 훌륭한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김소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