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수경의 엔터시크릿] 정우성·이정재 '우정'에서 배운 점

입력
2022.08.22 18:16

살면서 가장 중요하고도 어려운 응원 방식 중 하나는 가만히 곁에서 바라봐 주는 것이다. 친구든 연인이든 가족이든 그저 믿고 기다려 준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함께 일을 하는 사이에선 더더욱 그렇다. 조바심과 욕심, 걱정이 상대를 향한 믿음을 이기면 그때부터 둘의 사이는 삐걱댈 수밖에 없다.

'헌트'로 재회한 정우성과 이정재는 이 어려운 일을 해냈다. '가만히 바라보기'의 미덕은 둘의 오랜 우정의 비결이기도 하다. 먼저 감독의 길을 걸어본 정우성은 여러 조언들을 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친구 이정재에게 어떤 조언이나 주문도 하지 않았다. "이정재 감독의 해석과 속도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 그 이유다.

가만히 있는 게 가장 큰 응원이라 생각했다는 정우성은 '헌트' 촬영장이 오롯이 '이정재다운 현장'이 되길 바랐다. 그렇다고 오랜 절친을 고통의 시간 속에 던져두고 마냥 방치한 것은 아니다. '너무 힘들면 기댈 수 있을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정우성은 늘 이정재의 옆을 지켰다.

이정재는 '헌트'를 통해 정우성의 가장 멋진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 실제로 정우성은 어떤 작품에서보다 세련되고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으로 스크린에 등장한다. 단순히 시각적인 매력을 넘어 연기력 또한 빛을 발한다. 그야말로 두 사람이 함께 '칼을 갈았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반면 정우성은 이정재 감독이 지치지 않기만을 바랐단다. 현장에서 귀를 열어놓는 감독, 본인이 선택한 결정에서 따라오는 고뇌와 외로움 등 감정적 무게에서 벗어나려 애쓰지 않고 올곧이 받아들이는 감독이길 원했다. 이정재는 정우성의 마음을 읽은 듯 모든 것을 이겨냈고, 그렇게 '헌트'는 무사히 관객을 만나게 됐다.

정우성과 이정재는 함께 시간을 보낼 때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 좋은 영화를 같이 보고, 영화를 대하는 영화인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 캐릭터를 디자인할 때의 고민들도 서로 털어놓는 편이다. 몇 차례 사석에서 기자가 정우성을 봤을 때도 그랬다. 그는 영화를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머릿속이 영화로 가득한 듯했다.

지난 1999년 개봉한 영화 '태양은 없다'에서 만났을 때 두 배우는 20대였다. 23년의 시간이 흐른 만큼 변화도 생겼다. 체력이 떨어져 "아이고 아이고" 하며 액션 연기를 펼쳐 이른바 '아이고 액션'이 탄생했다는 웃지 못할 비화도 전해진다. 막상 '헌트'를 보면 엄살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현란한 액션을 보여주는 두 사람이지만.

20년 넘게 존댓말을 사용하고, 단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다는 이들은 많은 후배 연예인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정글 같은 연예계에서 굳건하게 톱스타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도 어쩌면 함께였기에 가능했던 일인지 모른다. 각각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부침과 슬럼프도 겪었지만 어떤 순간에서도 둘은 함께였다. 도전을 겁내지 않는 모습 또한 서로에게 자극이 되고 위안이 됐다.

단순히 멋진 배우들의 우정을 찬양하고자 이 글을 쓰는 건 아니다. 비현실적으로 보일 만큼 긴 시간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비결을 마음에 되새기기 위함이다. 지금 당장 내 옆의 사람에게 '가만히 바라봐 주기'를 실천해 봐야겠다. 어떤 상황에서도 믿어준다는 것, 그만큼 용기를 주는 응원은 없으니까.

유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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