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설·꽹과리 대신 풀벌레 소리 들린다... 달라진 '文 평산마을'

입력
2022.08.22 16:27
마을 입구 검문·검색 강화… 차량 트렁크까지 검사
문 전 대통령도 오후 4시쯤 1시간 평산마을 산책
주민 "고성과 욕설 잦아들어 숨통 트인다" 환영
시위 주최 측 "경호구역 확대 집행 정지 신청" 반발

“일단 풀벌레 소리가 들리잖아요. 더 지켜봐야겠지만 이대로만 유지된다면 더 바랄 게 없습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 자택이 있는 경남 양산시 평산마을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하루 종일 귓전을 때리던 '욕설'이 사라지고, 가을을 문턱에 둔 시골 마을의 풀벌레 소리가 가득해졌다. 22일 평산마을에서 만난 주민 신한균(63)씨는 “시위 소음에 묻혔던 새소리, 풀벌레 소리가 되살아났다”며 “고성과 욕설이 잦아든 것만 해도 숨통이 트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0시부터 문 전 대통령 사저 경호구역이 기존 울타리에서 반경 300m까지 경호가 강화된 평산마을은 어귀부터 삼엄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마을로 통하는 진입로는 경호구역으로 묶여 마을회관 아래 100여m 지점에서부터 경비가 이뤄졌다. 경호실 직원은 취재진을 포함한 모든 차량의 방문 목적을 확인한 후 차량 내부와 트렁크까지 검문검색을 한 뒤 마을로 들여보냈다. 지난 5월부터 평산마을에 상주하며 1인 시위를 해온 일부 유튜버는 차량에 달린 스피커 탓에 출입을 제지당했다. 경호처 관계자는 “직접적인 위해를 가할 수 있는 흉기뿐 아니라 마을 질서를 해치는 확성기나 스피커 부착 차량도 출입 금지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경호처는 경호 목적상 불가피하다고 인정되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 경호구역에서 질서유지, 교통관리, 검문ㆍ검색, 출입통제, 위험물 탐지 및 안전조치 등 위해 방지에 필요한 안전 활동을 할 수 있다.

기존에 설치된 천막과 시위 현수막도 모두 철거됐다. 대신 마을 곳곳엔 ‘여기는 경호구역입니다. 교통관리와 질서유지에 적극 협조 바랍니다’라고 적힌 안내 현수막이 내걸렸다. 이날 오전 8시 20분쯤 자택 근처에서 고성을 지르며 방송을 하던 극우성향 유튜버 1명이 경호구역 300m 밖으로 쫓겨나는 등 3, 4차례 소란도 일었다. 하지만 평산마을은 대체로 평온을 되찾은 모습이었다. 주요 집회시위 장소인 자택 앞 버스정류장 일대는 적막감마저 감돌았다. 마을 주민 박진혁(46)씨는 “확실히 조용해졌다”며 “마을 출입에 일부 불편이 있긴 하지만 주민들도 반기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오후 4시 쯤에는 문 전 대통령도 1시간 가량 마을을 산책하며 경찰과 경호처 등에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28일에는 마을주민과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평산마을에서 문 전 대통령 퇴임 100일 기념행사도 재추진하기로 했다.

다만 앞으로 집회시위가 더 격렬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여전하다. 100일 넘게 평산마을에서 시위 중인 A씨는 “경호 구역 밖(이웃 마을)에서 대규모 집회를 여는 방안도 고민 중”이라며 “이로 인한 마을 간의 갈등은 전적으로 문 전 대통령 측에 있다”고 주장했다.

일부 시위자들은 법적 대응에 나섰다. 문 전 대통령 부부와 비서실 관계자를 협박하다 구속된 60대 남성을 포함한 유튜버 등 4명은 이날 서울행정법원에 경호구역을 확대한 대통령 경호처 조치를 취소해 달라며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변호인 측은 “아무런 근거 없이 경호구역을 빙자해 적법한 집회를 원천적으로 봉쇄했다”며 “집회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반헌법적 조치에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양산= 박은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