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日 미쓰비시 '자산 현금화' 결정 미뤄…한일관계 일촉즉발

입력
2022.08.2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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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불속행 판단 시한 19일에도 침묵
'판단 미뤄달라'는 외교부 의견서 반영?
주심 김재형 대법관 다음 달 퇴임 '변수'

대법원이 강제동원 배상을 거부한 일본 전범기업 미쓰비시중공업에 대한 판단을 미뤘다. 미쓰비시의 국내 자산을 매각해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지급할지 여부를 19일까지 결정해야 하지만 디데이를 일단 넘겼다. 한일관계가 파국으로 치달을 수도 있는 민감 현안을 놓고 대법원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입장이 극명하게 맞선 피해자와 일본 사이에서 접점을 찾아야 하는 외교부의 부담도 덩달아 커졌다.

이날은 '심리불속행' 결정 기한이었다. 미쓰비시가 4월 19일 낸 재항고를 대법원이 기각하면 자산 강제매각과 현금화 절차를 밟는다. 일본이 극렬히 반대하는 시나리오다. 다만 대법원은 기각할지 여부 자체를 판단하지 않았다. 심리불속행 여부는 통상 4개월 안에 결정하지만, 강제규정이 아니어서 19일을 넘겨도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대법원이 얼마나 신중을 기하는지 가늠할 만한 대목이다.

앞서 외교부는 지난달 26일 대법원에 의견서를 냈다. 의견서에는 “강제동원 문제 해법을 마련하기 위한 외교적 협의가 진행 중”이라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판단을 미뤄달라는 내용이다. 결과적으로 외교부의 요청에 대법원이 호응한 셈이 됐다.

‘현금화 결정 이전에 해법을 마련하겠다’는 외교부도 시간을 벌었다. 그러나 상황은 녹록지 않다. 대법원에 일방적으로 의견서를 제출하면서 소송 당사자인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사전 설명도, 동의도 없었다"며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이에 피해자들은 민관협의회 불참을 선언했다. 외교부가 의견 수렴을 위해 마련한 자리가 반쪽에 그친 것이다. 협의회에서 어떤 해법을 마련한다 해도 의미가 반감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대법원이 숙고할 시간이 넉넉한 것도 아니다. 이번 사건 주심을 맡은 김재형 대법관은 내달 4일 퇴임한다. 장기간 심리한 사건을 후임에게 넘기는 전례가 드문 만큼 8월 안에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내릴 전망이다.

법조계에서는 “2018년 11월 대법원이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내린 터라 판결 이행을 거부하는 미쓰비시의 손을 들어주긴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이럴 경우 당시 수출규제 조치로 맞섰던 일본은 추가 보복조치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이날 국회에 출석해 “대법원 판단이 어떻게 나올지 예단할 순 없지만 존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법원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승소했는데도 미쓰비시가 배상하지 않자 이듬해인 2019년 미쓰비시가 보유한 한국 내 상표권 2건과 특허권 6건을 압류하는 강제 절차를 명령했다. 이에 불복해 미쓰비시가 지난해 항고했으나 기각됐다.

이후 법원은 지난해 9월 김성주·양금덕 할머니에게 지급할 5억여 원 상당의 특허권·상표권 매각 결정을 내렸다. 그러자 미쓰비시는 불복해 재항고했고 사건은 다시 대법원의 판단을 받게 됐다.

정승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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