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숙한 법정에선 대화하지 말아주세요. 사건번호 2021타경 ○○○○. 5명 앞으로 나와주십쇼. 강민하(이하 모두 가명)씨. 이수진씨. 김철수씨. 최인하씨. 김정인씨."
18일 오전 11시 40분. 한 명의 목소리만 조용한 법정을 채웠습니다. 과연 이곳은 어디일까요. 형사재판? 민사재판? 다음이 실마리입니다.
"최고가 매수인은 4억6,900만 원으로 응찰한 강민하씨입니다."
정답은 수원지방법원(수원지법) 1층 입찰법정 현장입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경매를 진행하는 집행관. 강씨는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했어요. 시세보다 1억 원가량 싸게 아파트를 갖게 됐거든요.
오르는 집값에 치솟는 금리. 보다 싼 집을 찾아 헤매는 이들에게 경매가 '내 집 마련' 방법으로 떠오르고 있어요. 경매시장 열기가 사그라드는 지금이 실수요자 입장에선 시장에 뛰어들 적기라는 말도 나오는데요. 어려워서 선뜻 나서지 못했던 부동산 경매, 실제 입찰 현장 분위기와 함께 차근차근 알려드릴게요.
법원경매정보 사이트에 들어가요. 경매물건→부동산을 누르면 용도별, 지역별로 경매에 나온 물건을 볼 수 있어요. 물건 상세 검색을 눌러 감정가가 얼마인지, 면적과 실제 사진 등을 꼼꼼히 봅니다.
마음에 드는 물건을 골랐다면 이제부터 집중하세요. 물건에 대한 법적 권리를 따지는 권리 분석 차례거든요. 내가 경매에서 낙찰받아도, 권리가 남았다면 낙찰자가 부담을 다 떠안을 수 있어요. 세입자가 집주인한테 받지 못한 보증금을 낙찰자 보고 내놓으라고 하면 꼼짝없이 줘야 될 수도 있으니까요.
자, 눈 부릅뜨고 등기부등본을 봅시다. 갑구, 을구에 ①근저당권 ②가압류(압류) ③담보가등기 ④경매기입등기 ⑤전세권이 있는지 보세요. 이 중에서 가장 일찍 등기부등본에 올라온 게 기준입니다. 이 기준을 '말소기준등기'라고도 부르는데요. 경매가 이뤄지면 나머지 권리는 다 소멸되니 이것만 보면 됩니다.
경매 자체가 돈을 빌려준 사람(채권자)이 '집을 팔아 돈을 돌려달라'고 법원에 요청한 거라 매각 대금이 누구에게 가는지 확실히 해야 소유권 정리가 끝납니다. 은행이나 소송을 한 채권자, 전세 세입자 등 매각대금이 누구에게 얼마나 가야 하는지, 더 소유권을 주장할 사람이 없는지 세세하게 확인합시다.
경매로 매각돼도 남아 있는 권리도 있어요. 맨 먼저 등기부등본에 올랐지만 배당에 나서지 않은 전세 세입자(선순위전세권), 재산을 처분할 수 없도록 법으로 묶어두는 '가처분', 공사대금을 받기 위해 버티는 '유치권'이나 토지주가 달라져도 건물주가 계속 점유할 수 있도록 한 '법정지상권'이에요.
또 대항력을 갖춘 세입자가 보증금을 못 받았다며 보증금을 줄 때까지 못 나가겠다고 할 수도 있어요. 이건 위에 말한 법원정보사이트에 있는 매각물건명세서와 현황조사서를 봐야 해요. 권리 관계가 너무 복잡하다면 그 물건은 과감히 포기하는 게 좋아요.
어려운 용어 해설은 끝났으니 한숨 돌리셔도 돼요. 이제부터 손품과 발품 차례입니다. 적정한 입찰가를 쓰기 위해서라도 시세를 따져 봐야겠죠. 국토교통부의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들어가 해당 물건과 주변의 최근 거래가를 봅니다. 네이버부동산이나 호갱노노 등 시중 사이트로 호가와 시세를 비교해도 좋아요. 지도상으로 학군, 상가 등 입지를 분석하는 것도 추천해요.
물건은 꼭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해요. 실제로 물건을 보러 가니 지하에 물이 차 있다거나, 집안 곳곳이 망가졌거나, 채무자가 밀린 관리비가 엄청 날 수도 있어요. 주변 공인중개소들은 물론이고 관리사무소에도 들러서 실제 물건에 문제가 없는지, 감정가와 예상 입찰가가 적정한지 묻습니다.
대망의 입찰일입니다. 앞서 말한 법원 사이트엔 경매가 진행되는 입찰기일이 나와요. 법정마다 다르지만 주로 오전 10시에서 낮 12시 사이에 입찰이 마감되고, 결과가 나오는데요. 이 중 하나인 수원지법을 다녀왔습니다.
준비물은 신분증, 도장, 입찰 보증금으로 통상 최저 매각금액의 10%를 수표나 현금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법원 1층엔 신한은행이 있으니 돈은 당일 준비해도 괜찮아요. 대리인이나 공동입찰은 각각 입찰자와 대리인의 신분증과 도장이 모두 필요해요. 불참자는 인감증명서와 위임장, 인감도장이 있어야 하고요. 없으면 낙찰돼도 무효 처리되니 유의하세요. 실제로 이날 두 명이나 신분증을 놓고 와 헛걸음을 했답니다.
수원지법은 오전 10시 30분에 입찰을 시작했는데요. 10시쯤 법정 앞엔 사람이 10여 명에 불과할 정도로 한산했어요. 사람들은 입찰법원에 들어서자마자 공고를 통해 내가 찾는 물건이 오늘 매각되는 게 맞는지, 준비해야 하는 보증금이 얼마인지 다시 확인했어요. 가끔 기일이 밀리기도 하고, 물건이 유찰된 경우 최저 매각금액의 20%나 30%를 보증금으로 준비해야 하거든요.
응찰자들은 법정 안에 있는 입찰표와 입찰 봉투, 보증금 봉투를 집어 든 다음 남들에게 보이지 않도록 칸막이에 들어가 기일입찰표를 작성했어요. 틀리면 바로 새 종이에 적어야 하고, 0이 몇 개인지도 꼭 봐야 해요. 만약 0을 실수로 더 썼다가 덜컥 낙찰되면 기재한 돈을 무조건 내야 하거든요. 보증금 봉투에 든 돈도 최저 매각금액의 10%(혹은 20, 30%)에서 10원이라도 차이나면 무효예요.
다 쓴 서류들과 보증금 봉투는 입찰 봉투에 넣어 스테이플러로 찍은 뒤 상단 부분의 수취증은 뜯어서 보관하면 됩니다. 낙찰에 실패하면 수취증을 집행관에게 보여줘야 보증금을 돌려받아요. 신분증 확인 후 집행관의 날인을 받아 입찰 상자에 넣으면 참여 완료입니다.
낙찰됐다고 끝이라고 생각했다면 오산! 보증금을 제외한 잔금을 치러야죠. 낙찰 뒤 법원이 낙찰 과정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1주)→낙찰자나 채무자 등 이해관계인이 항고가능(1주)한 시간이 지나면 한 달 내로 낙찰자는 잔금을 내야 해요. 낙찰부터 잔금 납부까지 4~6주가 걸리는 셈이죠.
특히 요즘처럼 대출 규제가 강화됐을 땐 자금 확보 여력이 있는지 보다 꼼꼼히 따져야 합니다. 덜컥 낙찰됐다가 오히려 손해를 볼 순 없으니까요. 혹시 모를 경우를 대비해 경매날 법정 앞에서 업자들이 나눠주는 법무사나 대출상담사의 명함을 챙겨두는 것도 좋아요.
낙찰받은 곳에 살고 있는 사람을 내보내는 '명도' 절차가 남았어요. 이사비를 줘서 점유자가 나가게끔 합의하는 관행도 있고, 만약 이들이 나가지 않는다면 강제집행을 통해 법적으로 내보내는 방법도 있답니다. 그렇지만 웬만하면 합의로 빠르고 확실하게 결정짓는 게 좋겠죠. 이후 소유권 이전등기까지 하면 경매로 부동산 갖기 완료!
이젠 최근 가장 인기가 많았던 유형을 살펴 볼까요? 지난달 지지옥션의 평균응찰자 수 통계를 보면 아파트가 5.8명으로 1위를 차지했어요. 경매에 나온 아파트 물건은 개당 평균 5명 이상의 응찰자가 몰린 거죠. 오피스텔(4.07명) 빌라(3.78명) 단독주택(3.06명)이 뒤를 이었어요. 토지(2.47명)나 상가(2.71명)에 비하면 주거용 물건이 경매시장에서도 인기가 많다는 걸 알 수 있죠.
지역별로는 평균응찰자 기준 경기(4.7명) 인천(4.6명) 대구(4.3명) 순으로 인기가 많았어요. 경매 물건은 매매와 달리 토지거래허가제를 적용받지 않고 자금조달계획서 제출 의무가 면제되다 보니 수도권 물건이 인기가 많습니다.
문제는 지금이 집값 조정기라는 점입니다. 올해 들어선 지난해와 달리 응찰자수도 줄었는데요. 끝으로 경매 시 유의할 점이 뭔지 이주현 지지옥션 선임연구원의 조언을 적어 둘게요.
"감정가와 시세를 가장 면밀하게 살펴봐야 해요. 감정평가는 집값이 오를 때 이뤄진 거라 감정가가 시세보다 높을 수 있거든요. 실거래가 자료나 부동산 호가 등 시세를 꼼꼼하게 조사해서 입찰금액을 정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