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부터 인류사회는 ‘나쁜 사람 전성시대’, 진정한 교육이 희망

입력
2022.08.18 20:00
25면

편집자주

'호크마 샬롬'은 히브리어로 '지혜여 안녕'이란 뜻입니다. 구약의 지혜문헌으로 불리는 잠언과 전도서, 욥기를 중심으로 성경에 담긴 삶의 보편적 가르침을 쉽고 재미있게 소개합니다.


신상필벌의 ‘파블로프 개’ 실험
전도서의 잇딴 비판·한탄에도
악한 사람이 칭찬받는 인간사회

개를 길들이는 방법은 단순해 보인다. 조건반사를 입증한 파블로프의 개 실험을 잘 아실 것이다. 조작적 조건 형성 이론을 입증하는 스키너 상자 속 쥐의 이야기도 참조해 보라. 이를 응용해서 개든 사람이든 조건을 설정하여 주고 적절한 상과 벌을 지속해서 학습하게 하면 그들의 행동이 어느 정도 길든다. 흥미롭게도 전도서의 한 구절은 이를 인정하는 듯하다. "사람들은 왜 서슴지 않고 죄를 짓는가? 악한 일을 하는데도 바로 벌이 내리지 않기 때문이다"(전도서 8:11).

이론적으로 보자면 참 맞는 말이다. 어릴 적부터 거짓말을 할 때마다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혓바닥을 이빨로 씹게 된다면 어땠을까? 남의 물건을 가지고 싶어 손을 내밀 때마다 어깨가 탈골을 한다면? 음흉한 맘을 품고 누군가의 뒤를 밟다가는 하늘로부터 날벼락을 맞아 실신하게 된다면? 그렇다. 우리가 남에게 악한 일 하기를 서슴지 않는 이유는 징벌이 곧바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악을 행하고도 그 처벌을 받기까지 충분히 여유를 부릴 수 있기 때문이고, 심지어 그 벌을 피해 갈 수 있어 또 다른 악을 행하기까지도 여유가 넉넉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법이 이를 보장해 주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그리고 뉴스에 등장하는 속 터지는 보도를 보고, 우리와 우리 자녀들은 다른 방식의 학습에 길들어 버렸다. 그래서 전도서도 이렇게 탄식한다. "악한 사람이 백 번 죄를 지어도 그는 여전히 살아 있다"(전도서 8:12). "이 세상에서 헛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악한 사람이 받아야 할 벌을 의인이 받는가 하면, 의인이 받아야 할 보상을 악인이 받는다. 이것을 보고, 나 어찌 헛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전도서 8:14).

심지어 사회가 악을 칭찬하고 선을 우습게 여기니, 우리의 삶 자체가 헛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것을 성경은 알아듣기 쉽게 이렇게 표현한다. "나는, 악한 사람들이 죽어서 무덤에 묻히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사람들은 장지에서 돌아오는 길에 그 악한 사람들을 칭찬한다. 그것도 다른 곳이 아닌, 바로 그 악한 사람들이 평소에 악한 일을 하던 바로 그 성읍에서, 사람들은 그들을 칭찬한다. 이런 것을 보고 듣노라면 허탈한 마음 가눌 수 없다"(전도서 8:10).

우리 사회의 경험과 역사를 통해 낯설지 않게 접하는 허탈한 일들을 기원전에 적힌 전도서도 이미 탄식해 왔다. 우리와 우리 자녀들이 경험과 역사를 통해 길드는 학습 조건은 매우 잘못 설정되어 있다. 그러니 어느 사람도 악을 해하는 것이 당장은 크게 두려울 것이 없다. 그런데 전도서가 이런 허탈한 관찰을 설명하면서 말머리에 참 의미심장하게 적어 넣은 것이 있다. 사회의 이러한 불의는 사람 간 '힘'의 불균형으로 벌어지는 일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살펴보다가, 이 세상에는 권력 쥔 사람 따로 있고, 그들에게 고통받는 사람 따로 있음을 알았다"(전도서 8:9).

이미 지독하게 겪어온 바이기에 인류는 어느 특정 계층이나 그룹이 권력을 점유하거나 그 힘이 견제를 받지 않게 되는 것을 막으려 부단히 노력했고 싸웠다. 당장 나 자신도 문제이지만 우리의 자녀들만큼은 이 세상을 허탈해하지 않길 바라기 때문이다. 반면 어떤 이들은 자기들끼리 누리는 기득권과 힘을 같은 패거리나 자기 자녀들에게 온전히 이양하고 싶어 한다. 쉽게 이양되리라 믿어서일까? 그래서 전도서는 잊지 않고 이 말도 적어 놓았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말하여 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전도서 8:7).

사람은 학습한 대로 판단하고 살아간다. 그래서 사회가 변하려면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교육은 우리가 살면서 보고 듣고 느끼는 삶의 경험 그 자체다.



기민석 목사ㆍ한국침례신학대 구약성서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