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빛공해 유발하는 유리빌딩숲

입력
2022.08.20 10:00
16면




편집자주

무심코 지나치다 눈에 띈 어떤 장면을 통해 우리 사회의 다양한 사연들을 소개하려 합니다. 시선을 사로잡는 이 광경, '이한호의 시사잡경'이 생각할 거리를 담은 사진으로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지난 12일 고층 빌딩이 즐비한 서울 강남대로. 장마 끝에 모처럼 나타난 파란 하늘이 반가워 올려다보니 강렬한 햇빛이 눈을 찌른다. 태양을 피해 고개를 반대로 돌려봐도 웬걸, 이쪽도 눈이 부시긴 마찬가지다. 환상 문학 속의 '이세계'도 아닌데 동쪽에도, 서쪽에도 해가 떠 있다. 도심 하늘에 '가짜' 태양을 띄운 범인은 바로 우후죽순 난립한 ‘유리궁전’이다.

2000년대 이후 이른바 유리궁전이라고 불리는 '커튼월' 건축 양식이 국내에서 붐이 일면서 빛 반사로 인한 한낮의 빛공해가 늘고 있다. '진짜 태양' 못지않게 눈부신 가짜 태양은 맑은 날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해가 높이 뜨는 한낮에는 고층 빌딩 유리벽에 반사된 햇빛이 맞은편 건물에 다시 반사되면서 여러 개의 태양이 병풍처럼 둘러싸기도 한다. 곡선으로 설계된 건물 외벽이 태양을 여러 개로 복제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커튼월 양식의 건물 중엔 석재나 콘크리트보다 디자인이 자유롭고 저렴한 유리를 외벽으로 쓰는 경우가 많은데, 확연히 떨어지는 에너지 효율과 입주민의 사생활 노출이라는 고질적인 문제을 안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 바로 반사율을 높인 특수 유리다. 철근 콘크리트 건물에도 유리창은 있지만, 커튼월 양식의 빌딩이 유독 눈이 부신 이유다.




일반적인 투명 유리의 경우 가시광선 반사율이 10% 미만인 데 비해 커튼월 건축물에 사용되는 특수 유리는 반사율이 40%에 달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심미성과 사생활 보호 효과는 탁월하지만 강렬한 외부 빛 반사로 인해 피해를 유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튼월 건축물과 관련한 규제는 에너지 효율과 같은 단열 기능에만 주로 집중돼 있어 피해를 예방하기가 쉽지 않다. 지난해 햇빛을 과도하게 반사하는 외장 마감재 사용을 규제하는 입법 시도가 있었지만 법안을 대표 발의한 의원이 같은 해 의원직을 상실하며 흐지부지됐다.

싱가포르나 홍콩, 호주의 일부 도시에서는 이미 빛 반사율이 20%를 초과하는 유리는 건물 외장재로 사용하지 못한다. 특히, 싱가포르의 경우 최근 빛공해 실측 평가를 추가하거나 조류 충돌 예방용 무늬를 표면에 그려 넣게 하는 등 유리 외벽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유리빌딩의 강렬한 빛반사는 주민 피해로 이어진다. 경기 성남시 네이버 사옥과 부산 해운대구 아이파크 인접 거주민들이 각각 빛반사 피해를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10년가량의 소송전 끝에 지난해 대법원이 두 사례 모두 주민들의 손을 들어줬다. 빛반사 피해를 처음으로 공식 인정한 판결이었다.

관련 규제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빛반사로 인한 피해는 인정되는 만큼, 현재로서는 건축 단계에서 햇빛 반사각을 고려해 인근 주민과 보행자에게 최대한 피해가 가지 않게 설계하는 것이 최선으로 보인다.

밝디 밝은 인공조명 때문에 밤하늘 별 보기 쉽지 않은 도심 빌딩숲, 유리벽의 난립으로 이제는 낮 하늘조차 올려다보기 쉽지 않은 시대가 되고 있다.





이한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