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7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강조한 말이다. 이틀 전 '담대한 구상'을 밝히며 대북 경제지원으로 한껏 분위기를 띄운 것과 사뭇 뉘앙스가 다르다. 2019년 2월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된 '하노이 노딜' 이후 비핵화 협상이 중단되고 잔뜩 얼어붙은 한반도 상황을 감안한 고민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윤 대통령은 "북한이 확고한 비핵화 의지만 보여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다 도와주겠다"며 담대한 구상에 대한 북한의 호응을 거듭 촉구했다. △북미관계 정상화를 위한 외교적 지원 △재래식 무기체계 군축 논의 △식량, 농업기술, 의료, 인프라 및 금융 지원 등 '당근'도 재차 언급했다.
7차 핵실험 준비를 이미 끝낸 북한을 향해 도발 중단과 대화 복귀를 촉구하는 의미가 크다. 심지어 "먼저 다 비핵화를 하면 우리가 지원한다는 뜻이 아니다"라고 한발 물러섰다. 북한이 극렬히 반대하는 '선(先)비핵화'를 고집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담대한 구상'을 실천에 옮기려면 북한과 만나는 게 급선무다. 하지만 정작 남북회담에 대해서는 "실질적 평화 정착에 유익해야 한다"며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 반세기 넘게 남북이 무수히 만났지만 위기와 교착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반도의 현실을 감안한 발언으로 읽힌다.
이날 기자회견에 앞서 북한은 서해에서 순항미사일을 쏘며 무력 도발을 재개했다. 북한이 향후 핵·미사일 도발 수위를 높여 갈 경우 정부의 섣부른 대화 제의는 협상의 우위를 내주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결정적으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전승절 계기로 직접 나서 강경 대남정책을 밝혔다"며 "북한이 공세적 도발로 나오는데 대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그간 비판해온 전 정부 정책을 다시 소환하는 모습이기에 선을 긋고자 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윤 대통령은 민감한 정치·군사적 문제에 대해선 대체로 안정적 상황 관리에 치중하며 원칙론을 택했다. 가령 '북한의 체제 안정 보장 요구'에 대해선 "한국 정부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북한 지역의 무리한, 또는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의 핵 보유를 통한 세력 균형' 관련 질문엔 "북핵 위협 고도화에 따라 확장억제의 형태가 조금 변화될 수는 있겠지만 NPT(핵확산금지조약) 체제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지켜낼 생각"이라고 답했다. 일부 보수진영이 요구해온 전술핵 배치 가능성을 일축한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