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예천군은 예천출신 약포 정탁이 정유재란 때 옥중의 이순신을 구명하는 상소를 올려 죽음을 면하게 한 '논구이순신차(論救李舜臣箚)'의 초고본을 엮어 놓은 '선현유적(先賢遺蹟)'을 국가보물로 추진한다고 17일 밝혔다.
예천박물관에 따르면 선현유적은 단권의 필사본으로 1597년 수군통제사 이순신(1545~1598)이 선조의 출정명령의 어겼다는 모함으로 옥사에 갇히자 당시 우의정이던 약포 정탁이 이순신을 구명하기 위해 직접 작성한 상소문(논구이순신차)의 초고본이다. 후손이 '선현유적'이라는 표지를 붙여 책자로 남겼다.
약포 선생이 상소문을 쓰기 전에 초안한 글로 당시 수정한 흔적이 여러곳에 발견돼 죽음을 각오하고 상소문을 작성하는 고심의 일단을 보여준다. 마지막 장에는 '만력(萬歷)이십오년삼월'이라고 적힌 것으로 미뤄 1597년 3월 초고를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상소문에는 "이순신의 죄는 사형을 벗어날 수 없을 만큼 극히 엄중한 것이지만 또 다시 고문을 한다면 산다는 것을 보장하기 어려우니 고문을 감하여 목숨을 걸고 공을 세울 수 있도록 하자"는 내용이 담겨 있다.
상소문으로 1597년 4월 풀려난 이순신은 백의종군으로 같은해 9월 명량대첩과 이듬해 11월 노량대첩으로 나라를 구했다. 최근 영화로 소개된 한산대첩은 옥고 5년 전인 1592년 벌어진 해전이다.
이순신은 훗날 "나를 추천한 이는 서애(류성룡)요, 나를 구해준 이는 약포(정탁)"이라는 말을 했다고 전한다.
약포 정탁은 전쟁이 끝난 후 고향 예천으로 낙향해 지금의 고평들을 개간하는 등 백성을 돌보는 일로 여생을 마쳤다.
예천박물관은 오는 10월 전쟁기념관에서 열리는 임진왜란 430주년 기획전에 전시해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
김학동 예천군수는 "우리 지역 충신인 약포선생이 목숨을 걸고 이순신을 구하고자 했던 것이 지금의 성웅 이순신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며 "이러한 우국충정 정신문화가 있어 예천이 충효의 고장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예천박물관2021년 2월 개관 이후 지금까지 '금곡서당창립문' 등 8건 14점의 문화재를 지정했으며, 별도로 11건 65점 유물은 문화재 지정을 위한 심의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