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도 움직이라 요구하라

입력
2022.08.1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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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배상 판결을 받은 일본 기업의 자산 현금화(매각) 관련 한국 대법원 결정이 곧 내려질 전망이다. 사건을 접수한 지 4개월까지인 ‘심리불속행 기간’이 19일 종료되는데, 이때까지 대법원이 미쓰비시중공업 측의 재상고를 기각하면 이 기업의 한국 내 자산을 법원 경매 등으로 강제 매각할 수 있게 된다.

일본 정부는 일본 기업 자산 현금화가 실제로 발생하면 상응 조치를 할 것이라 경고해 왔다. 2019년 단행한 반도체 소재에 대한 수출 규제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파괴력 큰 보복 조치를 내놓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 드라마와 K팝, 한국 화장품과 요리를 선호하는 젊은 일본 여성들을 중심으로 한 ‘4차 한류’의 기세가 꺾일지도 모른다. 윤덕민 주일대사가 “수십조~수백조의 비즈니스 기회를 잃을 수 있다”며 ‘현금화 일단 동결’을 주장한 것은 이런 우려 때문일 테다.

하지만 정말로 보복 조치가 단행될 경우 피해는 한국만 보는 게 아니다. 일본도 큰 피해를 본다는 사실은 이미 2019년에 증명됐다. 한일 관계 개선을 촉구해 온 조 바이든 미 행정부도 좋아할 리 없다. 한일 관계 파탄은 한국뿐 아니라 일본의 국익도 해친다.

한국 정부와 외교관은 지금 일본도 느긋해할 상황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고 일본 측도 움직이라고 촉구해야 한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일본 방문 때 일본 기업이 사과한다면 현금화 동결 후 논의가 가능하다는 피해자 측 입장을 전달했다. 지금까지 아무런 응답 없는 일본에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경고해야 한다.

정부 고위층은 일본 측만 만나지 말고 피해자 측도 만나야 한다. 80% 이상이 “우리가 양보해서까지 한일 관계 개선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국일보-요미우리 공동여론조사)하는 우리 국민에게 한일 관계 개선 필요성을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것도 중요하다.

일본 측엔 밀고 당기는 외교 없이 일방적 읍소만 하면서 피해자에게만 현금화 동결이란 양보를 요구해서는 피해자도, 일본도, 움직일 리 없다. 이 소송은 민사 소송이다. 일본 기업 대신 기금을 조성해 배상하도록 하는 ‘대위변제’ 같은 안도 피해자 동의가 없으면 실행할 수 없다.

도쿄= 최진주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