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처럼 마약 '좀비랜드' 안 되려면 '펜타닐' 오남용 막아야"[우리 곁의 마약]

입력
2022.08.19 09:00
8면
<상> 일상 곳곳, 마약의 엄습
윤태식 관세청장 인터뷰
"한국, 마약청정국 아닌 마약 허브 변질
'펜타닐 오남용'... 美, 심각한 사회문제
"일상생활부터 마약 근절 노력 필요"

“한국이 마약에 취약한 국가가 돼 가고 있습니다. 잠재적 위험이 크고, 치사량이 0.02g에 불과한 합성마약 펜타닐에 대한 국가 차원의 대비가 필요합니다.”

11일 인천국제공항에서 만난 윤태식 관세청장은 “국내에서도 2~3년 전부터 20대 중심으로 펜타닐 오남용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펜타닐은 말기 암 환자 등 고통이 극심한 환자에게 제한적으로 처방하는 마약성 진통제다.

펜타닐은 북미와 유럽에선 이미 심각한 사회문제다. 아편을 정제·가공해 만든 헤로인보다 중독성이 100배 이상 강한 탓이다. 2020년 이후 미국 18~45세 사망 원인 1위가 펜타닐 오남용일 정도다. 뇌가 손상된 펜타닐 중독자들이 길거리에 구부정한 자세로 서 있는 미국 필라델피아의 일부 지역은 아예 ‘좀비 랜드’라 불린다. 윤 청장은 “지난해 마약류 의약품 관리 강화 조치로 국내에서 펜타닐 구입이 의사 처방만으로 어려워지자 밀수입 시도 확대가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우리나라를 더 이상 마약청정국으로 볼 수 없다”고 강조한 그는 “국내 수요 증가뿐 아니라 한국이 아시아 마약물류 허브(중간 경유지) 역할을 하면서 오히려 대형 밀반입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과거에는 개인 소비 목적으로 항공우편 등을 통해 소량의 마약을 들여오려 했다면 최근엔 ㎏ 단위로 들여오려는 시도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관세청은 올해 상반기에만 1㎏ 이상의 메트암페타민(필로폰)을 들여오려던 시도를 24건(77.1㎏) 적발했다. 1년 전 같은 기간(9건·31.6㎏)과 비교하면 적발 건수와 적발량 모두 2배 이상 급증했다.

윤 청장은 “필로폰 1㎏은 약 3만3,000명(1회 투여량 0.03g)이 소비할 수 있는 엄청난 물량”이라며 “국제 범죄조직이 한국을 주요 마약 유통처 또는 신분 세탁을 위한 경유국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마약에 대해 안일하게 대응하다간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이 마약청정국 지위를 잃은 건 2015년(23.3명)으로, 국내 인구 10만 명당 마약류 사범 수는 이때 처음 20명을 넘긴 뒤 계속 증가해 지난해 31.2명까지 늘었다. 유엔(UN)은 10만 명당 마약류 사범 수가 20명 미만인 국가를 마약청정국으로 본다.

윤 청장은 마약 밀수 적발을 위한 예산·인력 강화와 함께, 일상생활에서부터 마약류를 근절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약 하면 막연하게 나쁘다고 생각하지만 마약류에 어떤 게 있고, 그 위험은 무엇인지 아는 경우가 많지 않아요. 특히 20·30대가 차지하는 마약 사범 비중이 점차 늘고 있습니다. 굉장한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2018년 40.6%였던 20·30대 마약 사범 비중은 지난해 56.8%까지 높아졌다.

영종도= 변태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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