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과 중부지방을 강타한 집중호우로 사망자와 실종자가 속출하는 가운데, 인명피해에 대한 정부의 판단 기준을 두고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자연재해로 피해를 입었더라도 개인의 부주의로 발생한 게 아니란 점이 입증돼야 ‘자연재해 인명피해자’로 정부가 공식 분류하기 때문이다.
중앙재난대책안전본부(중대본)는 12일 오후 6시 기준 이번 집중호우에 따른 사망자가 13명, 실종자 6명, 부상자는 18명이라고 집계했다. 피해 유형별로 살펴보면 주택 침수에 따른 사망 4명, 수목 제거 작업 중 사망 1명, 산사태 등 토사에 매몰돼 숨진 사람 4명, 급류로 인한 사망 4명 등이다. 실종자 6명은 지하주차장 급류에 휩쓸려 실종된 1명을 제외한 5명 모두 하천이 갑자기 불어나면서 급류에 빨려 들어갔다. 정부는 이들을 모두 자연재해 인명피해로 판단해 피해 지원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집중호우가 발생한 지난 9일 경기 양평군 강상면에서 도랑을 건너다가 급류에 휩쓸려 사망한 60대 남성과, 같은 날 오전 강원 평창군 용평면 속사리 계곡 인근 펜션에서 산책하러 나갔다가 물에 빠져 사망한 50대 남성은 자연재해 인명피해 대상자에서 빠졌다. 10일 경기 가평군 조종천 일대에서 물놀이를 하다 급류에 휩쓸려 숨진 채 발견된 60대 남성과, 11일 가족과 함께 피서를 위해 강원 강릉시 연곡면 솔봉 계곡을 찾았다가 물에 빠져 숨진 60대 남성도 자연재해 인명피해자로 분류되지 않았다.
중대본은 집중호우 피해에 집계되지 않은 사례들은 개인의 부주의나 실수로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의 ‘자연재난조사 및 복구계획수립 지침’에 따르면 ‘본인의 현저한 부주의 및 고의ㆍ실수 등 귀책 사유가 명백한 사고’는 자연재해 인명피해에서 제외된다고 명시돼 있다. 예컨대 홍수 구경을 하다가 본인 실수로 실족해 사망 또는 실종된 경우나 행정청의 퇴거 및 대피권고에 따르지 않아 발생한 사고 등이 해당한다. 유족은 자연재해 인명피해로 인정받아야 구호금 등 정부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중대본 관계자는 “사고가 발생한 지방자치단체에서 경찰 조사 등을 토대로 판단하고, 중대본에서 검토해 이를 통계에 반영한다”며 “개인의 부주의가 명확하게 드러난 경우에는 자연재해로 인한 인명피해로 분류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명시된 ‘개인 부주의’ 적용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강원도 재난안전대책본부 관계자는 “50대 평창 펜션 투숙객의 경우 호우경보 등을 통해 심각한 상황임을 인지하고도 산책하던 중 사고를 당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반면 경기 남양주에서 귀갓길에 하천 돌다리를 건너다 급류에 휩쓸린 10대 여학생이나 강원 원주시에서 폭우에도 벌통을 살피러 간 80대 노부부 등은 나이와 당시 상황이 고려돼 자연재해 인명피해자로 분류됐다.
전문가들은 자연재해 인명피해 적용 기준을 좀 더 명확하게 하고,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객관적인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상만 한국재난안전기술원장은 “기준이 애매모호해서 지자체마다 판단이 달라질 수도 있다”며 “개인 부주의 여부를 엄격하게 따져야 ‘자연재해 때 피해를 입으면 큰일 난다’는 안전의식을 강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영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도 “비슷한 사건이라도 당시 상황에 따라 기준이 달리 적용될 여지가 있다”며 “같은 재해기간에 발생한 사건에 대해선 일관된 기준을 적용해 판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