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올해부터 도입한 군 부대 납품용 농축수산물 경쟁입찰 제도로, 강원도를 비롯한 접경지역 농가의 상반기 납품량이 전년 대비 최대 86%까지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농가와 농·축협은 "국방부의 일방통행으로 판로를 잃게 됐다"며 원성을 쏟아내고 있지만, 국방부는 단계적 경쟁입찰제 도입 방침에 변함이 없다.
16일 한국일보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11개 육군 사단에 납품하는 강원지역 A축협은 올해 상반기 돼지고기 990톤을 공급하기로 군 부대와 계약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1,600톤)에 비해 38% 줄어든 양이다. 닭고기(861톤)와 한우(276톤) 계약물량도 전년도와 비교해 각각 37.1%, 40.5%씩 줄었다. 흰 우유 공급량도 40% 줄었다. 육우와 오리고기, 우유, 계란 등 다른 축산물 계약물량도 지난해보다 적게는 31%에서 많게는 86%까지 급감했다. 강원도가 최근 내놓은 자료도 A축협과 다르지 않다. 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도내 농축산물 군납물량은 2만1,773톤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3만5,598톤)과 비교해 30% 정도가 감소했다.
지난해까지 모든 군납물량을 지역 내 농·축협과 계약해 공급하던 것과 달리 국방부가 올해부터 전체의 30%를 경쟁입찰로 공급받은 결과다. 축협 관계자는 "가격을 핵심으로 한 갑작스런 제도 변경으로 상당수 농가가 판로를 잃게 됐다"며 "문제는 농가의 계약 규모가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 것이란 점"이라고 강조했다.
강원 화천과 양구 등 접경지 농민들은 주요 판로였던 군납 물량이 줄어들면서 당황하고 있다. 화천에서 애호박 농사를 짓는 김모(68)씨는 "판로를 하루아침에 뚫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유예기간도 없이 일방적으로 계약 물량이 줄어들어 농민들은 손해를 볼 수 밖에 없는 구조"라며 "군 부대에 상당 부분을 의존하는 접경지역 농업 기반 붕괴를 부추길 것"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양구에서 30년 동안 군납 농사를 짓는 김모(59)씨는 "농가에 적절한 소득을 보장하고 군 부대는 안정적으로 식자재를 공급받을 수 있는 장점이 사라질까 우려된다"며 "일부 특정 품목에는 경쟁입찰을 도입하더라도 나머지 제품에는 지역 내 계약제도를 유지해 달라"고 호소했다.
접경지역 농민들은 국방부가 부실급식 원인을 애꿎은 식자재 공급에서 찾았고, 몇 차례 열린 간담회도 요식행위에 그쳤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국방부의 경쟁입찰 도입 방침이 알려진 지난해부터 청와대를 시작으로 올해 5월까지 국회와 국방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찾아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호소했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국방부가 최근 강원도를 방문해 "경쟁입찰을 도입하더라도 품질인증을 받은 지역 농축산물을 우선 구매하고 가공식품 업체가 지역산 원료를 사용하면 가점을 부여해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은 정도다. 하지만 국방부는 경쟁입찰 비중을 내년 전체 군납의 50%까지 늘리고, 2025년엔 완전경쟁입찰로 전환한다는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접경지역 농민들은 "단가 보장이 없는 가공업체를 통한 식자재 구매는 헐값 납품을 부채질할 가능성이 크다"며 "최소 70% 이상 수의계약이 유지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6월 지방선거 당시 군납 수의계약 유지를 공약한 김진태 강원지사는 "이 문제가 답보 상태인 것으로 보고받았다"며 "모든 힘을 모아 수의계약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