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니까 다 괜찮다'는 말은 착각이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다른 가족 구성원의 문제를 헤집거나 충고해도 된다는 생각은 오판이다. 가족이라 더 아프고 속상하고 트라우마로 남는다. 학교는 졸업하면 그만이고, 연인은 헤어지면 남남이고, 직장은 옮길 수 있다. 바꿀 수도 끝낼 수도 없는 가족 관계는 그래서 더 섬세하게 다뤄야 한다.
한양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외래교수인 이호선 전문의는 신간 ‘가족이라는 착각’에서 가족 안에서 벌어지는 폭력, 학대, 갈등에 대한 진단과 해결책을 다뤘다. 다양한 상담 사례를 바탕으로 부부간, 부모와 자녀 관계에서 생길 법한 불편한 마음을 잘 다스릴 수 있도록 돕는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가족 간 거리두기’. 배우자와 자녀, 부모에게 격식과 예의를 갖추라는 제언이다.
우선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 ‘내가 낳은 자식’이라는 이유로, ‘아무것도 모를 것’이라는 생각에 무의식적으로 준 상처는 평생 남는다. 자기 아이의 강점을 파악하지 못하고 다른 아이와 비교해 의기소침한 아이로 만들거나, 형제간 서열이 차별로 이어지도록 방치하는 등의 문제를 지적한다.
‘부부는 하나’라는 주례사도 시대착오적이다. 부부 관계는 '젊었을 때나 나이 들었을 때나 끝없는 노력이 필요한 마라톤'이라는 게 저자의 정의다. 노부모와의 관계에서는 노인 우울증, 치매, 부양 등으로 인한 갈등을 예로 들며 자식과 노부모가 서로를 이해하고 현실적 돌봄 관계를 맺으라고 제안한다.
거창한 주의주장이나 이론을 내세우지 않고 여러 사례를 통해 자신의 가족관계를 돌아보게 하는 작은 진료실 같은 책이다. 가족 형태가 다양해져도 가정은 늘 '행복을 배우는 학교'다. '내'가 처음 마주하고 구성하는 사회의 기본 단위는 가족이기 때문이다. '가족에게는 그리움이 필요할 만큼 거리가 있어야 한다'는 저자의 말에 울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