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재앙의 시작인가..."기회의 문 빠르게 닫히고 있다"

입력
2022.08.1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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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CC 평가보고서 주 저자들 분석
평균기온 상승하면 수증기 증가
서울 홍수 등 이미  IPCC서 지적
"기후변화 지금 감당해야 할 문제"

관측 이래 115년 만의 폭우를 두고, 한국에도 본격적인 기후재앙의 묵시록이 시작된 게 아닌가 하는 불안함이 크다.

실제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IPCC) 평가보고서 저자로 참여했던 전문가들은 10일 "기후변화가 이미 심화돼 '기후위기'로 이어지고 있다는 걸 이번 호우가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온실가스 배출을 빠르게 감축하지 않으면 재난은 피할 수 없다.

권원태 한국기후변화학회 고문은 이번 폭우에 대해 “기후변화가 심화된 영향”이라며 “지구온난화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상황에서 이런 집중호우는 전 세계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지구온난화로 평균 기온이 1도 상승하면 대기 중 수중기량이 약 7% 증가한다. 현재 지구 평균 온도는 19세기 이후 약 1.1도 높아진 상태다. 이에 한꺼번에 많은 비가 쏟아지는 현상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권 고문은 지난 IPCC의 제4차, 5차 및 6차 보고서에 주 저자로 참여한 기후변화 전문가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기후센터(APCC) 원장을 역임했다.

IPCC 제6차 보고서의 총괄 주 저자로 참여했던 이준이 부산대 기후과학연구소 교수도 “지구온난화가 심화될수록 극한 현상의 빈도와 강도가 증가할 확률이 늘어난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밝혀진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최근 동아시아 지역에서 강수 측면의 변동성이 커진다는 연구도 많이 되고 있다”며 “기후변화는 미래의 이야기가 아닌 지금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것이 됐다”고 말했다.

다만 이 교수는 “이번 폭우가 지구온난화라는 단일 원인 때문이라고 단정짓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향후 과학적 근거에 따른 충분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후위기가 한국에 미치는 영향은 여러 차례 경고된 바 있다. 지난 6월 기상청과 APCC가 공개한 ‘국내 하천 유역별 극한 강수량의 미래 변화 분석결과’에 따르면, 지금과 비슷하거나 더 높은 수준의 탄소배출이 계속될 경우 60년 뒤인 21세기 후반(2081~2100년) 전국의 평균 극한 강수량은 지금보다 53% 급증할 것으로 추정됐다.

이는 현재(2000~2019년) 일 누적 극한 강수량 기준 187.1~318.4㎜보다 수십, 수백㎜ 더 많은 양의 폭우가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8일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에서 관측된 강수량은 381.5㎜였다.

획기적으로 탄소 배출량을 감축한다면, 21세기 후반 극한 강수량 증가폭이 29%(18.9~136㎜) 정도였다. 물론 이 경우에도 이미 대기 중에 누적된 온실가스로 인해 당분간 극한 기상현상이 지속되는 건 피하기 어렵다.

권 고문은 “취약계층이나 바깥에서 일하시는 분들과 같이 폭우나 폭염이 발생했을 때 가장 타격을 받는 이들을 위한 대책이 필요한데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그 동안 체계적으로 준비를 해 왔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 2월 공개된 IPCC 제2실무그룹 보고서와 관련 논문에 따르면, 온실가스를 획기적으로 줄이지 않으면 2030년 이후 서울은 세계 주요도시 중 홍수의 위협을 가장 크게 받게 될 곳 중 하나로 꼽혔다. 부산은 해수면 상승으로 2070년 연간 약 3조6,000억 원에 달하는 피해를 보고, 인천은 약 1조2,000억 원, 울산은 약 7,000억 원의 피해가 발생한다. IPCC는 지난해 보고서에서 약 7년 뒤인 2030년 초반이면 지구의 온도는 산업화 이전 대비 평균 1.5도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돌이키기 어려운 수준으로 극한의 피해가 생길 거라는 뜻이다.

이 교수는 “지난해 공개한 IPCC 제1실무그룹 보고서의 중요한 메시지는 1.5도 상승을 막기 위한 기회의 창이 아직 열려 있지만 굉장히 빠르게 닫히고 있다는 것”이라며 “늦어질수록 감당해야 할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는 만큼 이번 일을 계기로 보다 적극적인 대응을 시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혜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