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가 '부캐'로 자아 지키는 법 [마음청소]

입력
2022.08.11 14:00
<13> 직장인 '본캐' 외 '부캐' 키우는 MZ세대 인터뷰

편집자주

내 마음을 돌보는 것은 현대인의 숙제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이후엔 우울증세를 보인 한국인이 36.8%에 달하는 등 '코로나 블루'까지 더해졌죠. 마찬가지로 우울에피소드를 안고 살아가는 보통 사람, 기자가 살핀 마음 돌봄 이야기를 전합니다. 연재 구독, 혹은 기자 구독을 누르시면 취재, 체험, 르포, 인터뷰를 빠짐없이 보실 수 있습니다.


"어떤 게 '본(本)캐' 계정이에요?"

고백하자면 기자는 총 7개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인스타그램' 계정을 갖고 있다. 그중 가장 자주 쓰는 계정은 두 개. 하나는 회사 학교 교회 지인들과 소통하는 계정이고, 다른 하나는 웰니스와 독서 등 취미 활동으로 알게 된 지인과 연결하는 조금 느슨한 관계의 계정이다.

최근 한 모임에서 이 질문을 받고 조금 고민했다. 당연히 본명과 본업을 앞세우는 전자가 '본캐' 계정이라고 할 법도 했으나, 기자는 이렇게 답했다. "둘 다 제 '본캐'예요. 어느 것 하나 주(主)가 아니라고 할 수 없어요."

2020년 MBC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서 유재석이 신인 트로트 가수 '유산슬'로 '부(副)캐(한 사람이 다양한 캐릭터를 가지고 각각에 맞는 활동을 하는 것)'를 생성한 이후 부캐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이제는 단순한 놀이를 넘어서 자기만족, 자아실현 등 '본캐'의 마음을 돌보기 위한 도구로 쓰이고 있는 모양새다. 제2의 자아를 일컫는 '부캐'는 사이드 프로젝트, 사이드 허슬, 딴짓, 취미, N잡(여러 개의 직업) 등 다양하게 일컬어진다. 경제적 이윤에 초점을 둔 '부업'과 달리, '부캐'는 자아의 또 다른 가능성을 키우는 데 집중한다는 특성이 있다.

한 회사에 소속돼 고정된 월급을 받는 '본캐'를 두면서 '부캐'를 키우는 MZ세대들을 만나 봤다. 이들은 모두 '부캐' 활동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탄탄히 돌볼 뿐만 아니라 나아가 '본캐'와의 선순환을 모색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채워지지 않는 '내 마음', '부캐' 통해 탄탄히

아무리 이름난 직장에 다녀도, 고연봉을 받아도 삶의 어려움이 사라지지 않는 게 우리네 인생일 터. 기자가 만난 이들은 소위 '내로라하는 직장'을 다니면서도 마음 속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를 위해 '부캐'를 만들었다. 모두 '나'로 귀결된다는 특징이 있었다.

IT기업에서 6년째 서비스기획자로 일하는 몽자(가명)씨는 주도성과 주체성을 갈고닦으려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는 "안정적인 직장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는 상황에 길들여지며 입사 4년 차에 번아웃이 찾아왔다"며 "주도적으로 '내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주말에 놀 거리를 추천하는 뉴스레터 '주말랭이'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광고회사에서 3년째 글로벌마케팅을 담당하는 이가희(29)씨는 퇴근 후 전통주 모임과 콘텐츠를 기획하고 있다. 그는 "회사에서는 나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일들이 많지 않아 답답할 때가 있는데, '부캐'에서는 내 선택으로 모든 것을 이끌 수 있으니 뿌듯하다"고 말했다.

그저 '나'를 더 알고자 하는 마음이 '부캐'로 이끈 경우도 있다. 이씨는 "퇴근 후 에너지가 없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모습이 싫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아보자 하다가 여기까지 왔다"고 전했다. 패션 커머스 플랫폼 회사에서 8년 차 서비스기획자로 일하는 황지혜(30)씨는 "내가 뭘 좋아하고, 잘하는 사람인지, 어떤 빛을 가진 사람인지 알아보고 싶어서 이것저것 시도해본 게 지금의 경험으로 이끌었다"고 했다. 황씨는 현재 사계절 제철 취미 커뮤니티 '호비클럽'과 테니스 관련 브랜드 '테니스테니스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내재된 욕구가 용기와 도전정신 북돋워

억눌려 있던 제2의 자아와 삶에 대한 욕망 때문일까. 이들은 모두 "'부캐'를 시작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6년 차 라디오 PD인 동시에 주 6일 8개 일간지를 읽고 기사를 스크랩하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운영 중인 진예정씨는 "처음엔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는 자각조차 없었다"며 "그저 좋아하는 일을 사람들과 나누고자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오히려 '본캐'에서는 얻지 못한 정서적 욕구가 이들의 도전정신과 행동력을 이끌었다고 한다. 황씨는 "본캐에는 타인들의 의견과 의사결정이 필요한 반면, 부캐에서 하는 건 온전히 '나만의 것'이기에 성취감과 즐거움이 다르다"고 전했다. 방송국 시사 PD 2년 차이자 여성을 위한 온라인 글쓰기 워크숍 '분노의 글쓰기 클럽'을 운영하는 사과집(가명)씨는 "회사에서는 주니어일수록 '나만의 노하우'에서 나오는 성취감을 맛보기 쉽지 않은데, 부캐에서는 가능하다"면서 "또 본캐에서 채워지지 않은 '안전한 여성 공동체를 만들고 싶다는 갈증'을 부캐를 통해 채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본캐가 채워주지 못하는 '덕업일치'를 이룰 수 있다. 이커머스 쇼핑플랫폼 고객 서비스 모니터링팀에서 일하는 김다운(28)씨는 "오전 7시에 출근해 오후 4시 퇴근하는 본업도 좋지만, 소설 쓰기와 블로그마켓, 오프라인 공간모임 주최 등 내가 좋아하는 다른 것들을 통해 일상에 변주를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진씨는 "어렸을 때부터 사랑, 인생 등 어려운 주제를 놓고 토론하는 걸 좋아했는데, 본업인 라디오 매체를 통해 이를 다루기는 쉽지 않았다"고 전했다.

"부캐, 돈은 안 돼도 '본캐'에 도움 되기도"

부캐가 현재 하는 일과의 시너지를 내기도 한다. 마케터이자 작가로 활동하는 김상민씨는 이렇게 설명했다.

경직된 삶에 리듬을 부여하는 사이드 프로젝트는, 내 삶의 기둥 한쪽이 무너지더라도 다른 기둥을 통해 재기할 힘도 제공해준다.
마케터 김상민씨

여기에 금전적 이득도 따라온다면 금상첨화겠지만 대부분 '용돈벌이' 정도에 머물거나 적자 상태다. 하지만 이들은 크게 개의치 않는다. 모두 "경제적 자유를 실현하기 위해 시작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진씨도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1만 명을 넘은 이후에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마케팅 전문 업체로부터 몇 번 연락받기도 했으나, 내 프로젝트가 추구하는 방향과는 맞지 않아 반려했다"고 고백했다.

"'부캐' 오래 유지하려면 '거리두기'도 필요"

물론 체력과 정신적 힘이 한정된 탓에 한계가 오기도 한다. 그럴 때는 일부러 '부캐'와의 거리를 두기도 한다. 몽자씨는 "매년 두 번씩 2주 동안 뉴스레터를 휴재한다"고 전했다. 김다운씨는 "지치고 힘든 상황에서 '부캐'를 진행하면 결국 부캐에도 부정적 영향이 간다"며 "그럴 때는 '부캐를 좋아할 때'만 하면 된다"고 조언했다. 애주가로서 부캐를 통해 덕업일치 중인 이씨는 "일주일에 1, 2번만 음주를 한다는 나만의 원칙을 뒀다"며 "내 몸에 무리를 주면서까지 부캐를 진행하는 것보다 내 속도에 맞춰서 꾸준히 가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근 6주 동안의 휴식을 가진 진씨는 "처음에는 '한창 물 들어올 때 노 젓기를 그만두면 어떡하냐'는 말을 듣기도 했지만, '닥치는 대로 노만 젓다가 그 물에 빠져 죽지 않을까'라는 마음이 들었다"며 "결과적으로는 쉬어 가면서 더 장기적으로 볼 수 있는 여유를 얻었다"고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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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성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