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하 사는 일가족 덮친 폭우... "대피 안내방송도 없었다"

입력
2022.08.1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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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동 반지하 주택 일가족 3명 사망
40대 발달장애인·10대 초등학생 포함
수차례 신고 불구 30분 만에 경찰 도착
경찰·소방 전화 먹통...재난안전 '적신호'

“어떻게든 구하려고 했는데....”

8일 수도권 물난리로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반지하 주택에 거주하던 발달장애인 가족이 침수로 고립돼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집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가족을 발견한 이웃들은 유리창을 깨는 등 필사적으로 구조를 시도했지만 허사였다. 같은 날 동작구 상도동에서도 50대 기초생활수급자가 물이 차오르는 집에서 탈출하지 못해 목숨을 잃었다. 이곳도 저지대에 위치한 반지하 주택이었다.

이웃들 흙탕물 헤치고 구조 '안간힘'

9일 경찰과 소방당국에 따르면 신림동 반지하 주택 침수로 홍모(47, 46세)씨 자매와 동생 홍씨의 딸 황모(13)양이 숨졌다. 언니는 발달장애인으로, 함께 사는 어머니 A씨가 병원 검사로 입원한 사이 동생 홍씨가 언니를 돌본 것으로 알려졌다.

전날 오후 8시쯤 관악구 일대에는 시간당 130㎜가 넘는 폭우가 쏟아졌다. 홍씨 가족의 이웃주민 김인숙씨는 “오후 8시 30분인가 울먹이며 ‘우리 애들 좀 도와달라’는 A씨 전화를 받고 나갔는데, 이미 물이 가득 들어차 집 안이 보이지 않았다”고 전했다. 주민들이 힘을 모아 방범창을 뜯으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옆집에 사는 전예성(52)씨는 “하수구가 역류하면서 순식간에 물이 차올라 손쓸 틈이 없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들 가족을 구조해달라는 신고만 경찰에 8건 접수됐다. 오후 8시 59분부터 2분마다 신고가 쇄도할 만큼 상황은 급박했다. 같은 빌라에 사는 박모(35)씨는 “119와 112에선 ‘통화량이 많아 기다리라’는 자동응답만 반복되다가 전화가 끊겼다”고 말했다.

경찰은 신고 접수 후 30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다. 관악경찰서 관계자는 “비 피해 신고가 40건 넘게 접수돼 순차적으로 처리하느라 출동이 다소 늦어졌다”고 설명했다. 소방관들도 경찰의 공동대응 요청을 받고 나서야 오후 9시 45분쯤 현장에 왔다. 관할 관악소방서 인력이 없어 인근 양천ㆍ구로소방서에서 지원을 와 뒤늦게 물을 퍼냈다. 그러나 가족은 사망한 뒤였다.

저지대 대피 안내 없어... 재난대응체계 '적신호'

이날 저녁 침수피해를 입은 신림동 일대 주민들은 대피 안내를 제대로 받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관악구청은 ‘도림천 범람 우려’ ‘봉천동 산사태 우려’ 등 오후 9시 21분부터 총 5건의 재난안전 문자를 발송했지만 그 시간 저지대 주민들 집에는 빗물이 들어차 있었다. 서울시가 ‘저지대 침수구역 대피’ 최초 재난문자를 보낸 시간도 오후 9시 19분이었다. 전예성씨는 “대피 문자를 받기도 전에 물이 밀려 들어와 (숨진 가족은) 언제 밖으로 나가야 할지 판단하지 못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관악구청 관계자는 “긴급 재난문자는 위급 상황에서 주민 대피를 권고하는 내용인 만큼 신중하게 발송할 수밖에 없다”고 해명했다.

관악구와 마찬가지로 세찬 비가 내린 상도동에서도 반지하 주택에 거주하던 50대 여성 오모씨가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전날 오후 11시 3분쯤 구조대원이 물에 빠진 오씨를 발견해 인근 대학병원으로 옮겼으나 소생하지 못했다.

이 집에는 오씨 어머니와 여동생 등 세 가족이 살고 있었다. 모친과 여동생은 서둘러 집 밖으로 나왔으나 뒤따르던 오씨는 갑자기 차오른 물에 갇혀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지하 주택에서 연이어 비극적 사고가 발생하자 긴급 재난상황에 대응하는 사회안전시스템에 적신호가 켜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계속된 신고에도 출동은 늦었고, 침수 우려가 높은 지역의 반지하 신축 문제도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조원철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명예교수는 “폭우와 같은 재난 상황에선 당연히 통신 장애가 급증하는데 행정안전부가 회선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것 같다”고 비판했다.

나주예 기자
김도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