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갈등 새 뇌관... '하나의 중국'에 도전하는 '대만정책법'

입력
2022.08.08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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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공화 거물 상원의원 초당적 발의
법 통과되면 미국 '전략적 모호성' 폐기
양국 관계 파국 우려 백악관 수위 조절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에 이어 미 의회가 입법을 추진하는 ‘대만정책법’이 미국·중국 갈등의 뇌관으로 떠오르고 있다. 40년 넘게 미국이 지켜 온 ‘전략적 모호성’ 전략을 뒤집고 대만을 사실상의 독립 국가로 인정하는 게 법안의 핵심이다. 갑작스러운 궤도 수정이 중국을 또다시 자극할 수 있는 만큼, 백악관은 난색을 표하며 법안 통과에 제동을 걸고 있다.

대만을 사실상 주권 국가로 인정

7일(현지시간)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상원에 계류 중인 ‘2022 대만정책법’ 수위를 낮추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법안은 민주당 소속 밥 메넨데스 상원 외교위원장과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의원 등 여야 거물급 의원들이 6월 공동 발의했다.

△대만을 미국의 주요 비(非)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으로 지정하고 △입법 이후 4년간 45억 달러(약 5조9,000억 원) 규모의 군사 지원을 하며 △대만이 각종 국제기구와 다자무역협정에 참여할 수 있게 돕는다는 것이 법안의 골자다.

‘비나토 동맹’은 나토에 가입하지는 않았지만 미국과 전략적 안보관계를 맺은 나라로, 한국과 일본이 대표적이다. 이 자체로 상호방위조약 같은 효력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토 회원국이 누리는 다양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대만을 사실상 주권 국가로 인정하고 군사·외교 관계 강화에 나서겠다는 얘기다.

미국은 1979년 중국과 수교하면서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인정하고 대만과 단교했다. 대신 국내법으로 대만관계법을 제정해 대만 문제에 관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뒀다. 대만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감안해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새 대만정책법이 만들어지면 미국이 견지해 온 ‘전략적 모호성’ 원칙은 폐기된다. 대만을 둘러싼 질서가 43년 만에 바뀌는 셈이다.


중국 자극할라… 백악관 ‘수위 조절’

백악관은 골머리를 앓고 있다. 펠로시 의장의 대만행으로 미중 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의 ‘역린’을 건드리면 양국 관계가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는 탓이다.

이에 법안 수위 조절을 위한 물밑 작업이 진행 중이다. 우선 국가안보회의(NSC) 차원에서 일부 법안 내용 수정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통신은 “민주당 의원들도 설득 중”이라고 전했다.

백악관의 내부 단속은 어느 정도 효과를 보고 있다. 상원 외교위원회는 이달 3일 해당 법안을 심의할 예정이었지만, 일정이 미뤄졌다. 핀란드와 스웨덴의 나토 가입 승인 표결을 먼저 처리해야 한다는 게 표면적 이유지만, 백악관의 ‘입김’이 작용한 결과라고 외신들은 분석했다. 메넨데스 위원장은 최근 “일정 연기로 법안을 다듬을 여지가 생겼다”고 밝혔는데, 이 역시 법안 후퇴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폴리티코는 “미중 갈등 격화 이후 의회 내부에서도 일부 우려 기류가 포착됐다”고 전했다.

공화당은 ‘지나친 중국 눈치 보기’라며 버티기에 나섰다. 짐 리시 공화당 의원은 “백악관은 이미 대만 정책을 충분히 훼손해 왔다”며 “법안 처리 과정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상원 의석을 민주당과 공화당이 50석씩 양분하고 있어서 법안 표결 결과를 예측하기는 어렵다. 다만 상원의 승인을 받더라도 하원의 승인과 바이든 대통령의 법안 서명이라는 최종 관문이 남아 있다.

허경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