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한국 드라마 패키지 전체 에피소드 업로드됐습니다". 23일 중국 최대 오픈 마켓인 타오바오에서 드라마 '우영우'(奇怪的律师禹英雨)를 중국어로 검색해 보니 '우영우' 영상이 5~10위안(1,000~2,000원)에 불법 거래되고 있었다. 서울 소재 대학원에 재학 중인 중국인 장흥거(25)씨는 "본토에서 제일 인기 있는 드라마가 '우영우'라며 "가상사설망(VPN)을 통해 넷플릭스에서 '우영우'를 챙겨보는 중국 친구들이 많아 드라마 얘기를 자주 한다"며 웃었다.
#2. K팝 시장에서 '큰 손'은 중국 팬들이다. 홍콩 일간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방탄소년단 멤버 뷔의 웨이보 팬클럽인 '뷔 바'는 그룹 새 앨범 '프루프'가 6월 10일 발매되자 그날 약 17만 장을 사들였다. 349만 달러(약 45억 원)어치다. 창춘에 사는 대학생 스텔라(21)씨는 "정부가 단속한다고 한류 팬들이 열정을 잃지는 않는다"며 "한류 스타의 TV 출연을 금지해도 모두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한류의 모든 것에 대해 얘기하고 최근엔 더 많은 사람이 한류에 끌리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에 대한 보복 조치로 중국 당국이 2017년부터 실시했던 한한령(한류제한령)은 힘을 잃어가고 있다. 중국 MZ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는 VPN으로 넷플릭스 등에 우회 접속해 한국 드라마를 보고 있고, 중국 정부가 지난해 과소비 조장 등을 이유로 20여 개의 K팝 그룹 팬덤 계정을 막았는데도 CD를 대규모로 사들이고 있다. 정부 단속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현지 젊은 세대들이 한류를 적극 소비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중국 속 한류는 더 거세지는 추세다. 본보가 관세청 수출입실적 통계를 통해 최근 5년간 중국에 팔린 음반 수출액 추이를 조사한 결과, 한한령이 내려진 첫해인 2017년 상반기 483만 달러였던 수출 금액은 올해 같은 기간 1,887만 달러로 약 4배 증가했다. 한한령으로 K팝 현지 유통에 장벽이 생긴 데다 중국 정부가 팬덤 활동의 고삐까지 조여 K팝 시장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와는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진 셈이다.
한류를 막아도 큰 효과를 보지 못하다 보니 중국 정부는 속도를 조절해가며 한한령을 일부 풀어주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튼 분위기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중국에서 운영 중인 베이징비즈니스센터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현지에서 TV와 OTT로 정식 유통된 한국 드라마는 박서준 주연의 '이태원 클라쓰'(2020) 등 총 13편이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2018)가 2017년부터 시행된 한한령 후 처음으로 올해 3월 중국 방송 규제 부처인 광전총국의 심의를 통과한 뒤 송혜교 주연의 최신작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2022) 등 한국 드라마가 연이어 대륙에 상륙했다.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한국 드라마가 중국에서 단 한 편도 TV와 OTT에 공개되지 못했던 것을 고려하면 일단 숨통을 틔운 셈이다.
중국 정부가 한국 콘텐츠 정식 유통의 물꼬를 일부 터주면서 한한령 전면 해제에 대한 기대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게 양국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한한령 해제의 장애물은 크게 세 가지다. ①중국 정부는 연예계를 상대로 '정풍 운동'을 벌이고 있고, ②일부 소비자 사이에선 '애국 소비' 바람도 불고 있다. ③윤석열 대통령이 6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 갔다 온 뒤 얼어붙은 한중 관계도 양국 문화 교류의 악재다. 윤호진 콘진원 베이징비즈니스센터장은 본보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한중 수교 30년 관련 행사에 국악예술단원 10여 명이 참여하기로 한 게 그나마 이뤄진 교류"라며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대만을 방문해 미중 갈등이 첨예화했고 중국이 10월 당대회를 준비 중인 상황이라 당분간 중국에서 K팝 공연이 허용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한령이 내려진 2017년 이후 중국에서 K팝 그룹 단독 공연은 단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았다.
중국 당국이 젊은 세대의 수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 콘텐츠의 정식 유통을 막으면서 불법 복제 등의 피해는 고스란히 민간이 떠안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5일 중국 국가판권국에 '우영우' 관련 저작권 침해 대응과 합법 유통을 위한 협조를 요청했다. 박성순 배재대 미디어콘텐츠학과 교수는 "합법적 유통이 막혀 발생하는 당장의 손해도 문제지만, 불법 유통이 만연해 생길 수 있는 '한국 콘텐츠는 무료'라는 인식의 확산이 더 큰 문제"라고 꼬집었다. 한중 콘텐츠 유통 사업을 하는 아시아홈엔터테인먼트 김원동 대표는 "한한령과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중국과의 관계가 사실상 원점으로 돌아갔는데, 회복이 아닌 리셋(재설정)의 개념에서 새롭게 교류의 문제를 접근해야 한다"고 의견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