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부산'이 궁금하다면… 바다가 아니라 산으로 가야

입력
2022.08.0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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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행특공대의 ‘피란수도 부산’ 투어

“저는 이 터널을 또 다른 시간으로 인도해 주는 타임터널이라고 소개합니다. 바로 ‘진짜 부산’을 이해할 수 있는 곳으로 이동하기 때문이죠.” 영주동과 서대신동을 잇는 부산터널을 통과하면서 손민수 부산여행특공대 대표의 목소리는 살짝 들떠 있었다.


부산은 한국전쟁 1,129일 중 1,023일 동안 대한민국 임시수도였다. 대통령 집무실뿐만 아니라 입법 사법 행정기관이 모두 부산으로 옮겨왔다. 부산시는 동아대박물관, 복병산 기상관측소, 부산항 제1부두, 유엔기념공원, 아미동 비석문화마을 등 9곳을 ‘피란수도 부산’이라는 주제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를 추진 중이다. ‘피란수도 부산’ 투어는 동아대박물관과 임시수도기념관, 비석문화마을 등을 찾아간다. 광복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급속하게 성장한 부산의 속살을 볼 수 있는 경로다. 진짜 부산의 모습은 바다가 아니라 산에 있다는 것이 손 대표의 지론이다.


동아대 부민캠퍼스에 있는 석당박물관은 전쟁 당시 대한민국 임시수도 정부청사였다. 1925년 경남도청 건물로 지었으니 100년 가까이 된 건물이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후 대한민국 정부는 전황에 따라 6월 대전, 7월 대구로 이전했다가 8월 18일 부산으로 옮겼다. 단아한 붉은 벽돌 건물 3층에 임시수도에 대한 기록이 전시돼 있다.

법학전문대학원 뒷마당에는 선로 잃은 전차 1량이 놓여 있다. 부산은 서울, 평양과 함께 국내에서 전차가 운행된 3개 도시 중 하나다. 1915년 온천개발과 일본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부산역과 온천장 구간에 운행하기 시작해, 1968년까지 3개 노선에 50여 대의 전차가 도심을 누볐다.

동아대 캠퍼스에서 산자락으로 이어지는 도로는 임시수도기념관으로 이어진다. 골목 양쪽에 부산의 옛 모습을 담은 벽화가 그려져 있고, 계단 위에 둥근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여러 군상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고통스럽다.

“여기서 퀴즈 하나, 11월 11일은 무슨 날일까요?” 손 대표의 해설이 다시 활기를 띤다. ‘빼빼로데이’가 정답이면 당연히 퀴즈가 아니다. “턴 투워드 부산(Turn Toward Busan) 행사가 열리는 날입니다. 매년 11월 11일 11시 11분, 1분간 유엔기념공원을 향해 묵념을 합니다. 연인원 117만 명에 달하는 한국전쟁 참전 군인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시간입니다.” 대연동에 위치한 유엔기념공원은 전 세계에서 유일한 유엔장묘시설이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아직까지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해외 참전 용사 2,314명의 혼이 잠들어 있다.




계단 뒤편에 아담한 2층 저택이 보인다. 역시 1926년 경남도지사 관사로 지은 건물로, 이승만 대통령이 1,000일 가까이 머물렀던 곳이다. 내부는 거실과 침실, 회의실, 집무실 등을 볼 수 있도록 꾸며 놓았다. 바로 옆 부속건물이 임시수도기념관이다. 달동네의 전형이었던 판잣집 모형과 전쟁 전후 부산의 모습을 전시하고 있다. 전시실 한 칸은 김동리의 소설 ‘밀다원시대’에 등장하는 다방으로 꾸몄다. 작가가 1·4 후퇴 때 피란 생활을 경험으로 쓴 소설로, 서울에서 피란 온 당대 문인들이 전쟁이라는 폭압적 상황에서 겪는 고뇌와 문단의 현실을 파헤친 작품이다.

다음 일정은 아미동 비석문화마을이다. 꼬불꼬불 산복도로 아래 경사지에 주택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비석마을은 말 그대로 묘지 위에 지은 산동네다. 아미동 산 22번지는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의 공동묘지였다. 산중턱에 부려진 피란민들은 급한 대로 묘지 위에 거처를 마련할 수밖에 없었다.

몸을 돌려야 겨우 마주 오는 사람을 피할 수 있는 좁은 골목을 돌다 보면 망자의 이름과 생몰 연도가 새겨진 비석이 축대나 건물 기초로 활용된 모습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주민이 거주하지 않는 주택은 당시의 생활상을 담은 전시관으로 꾸몄다. 집도 골목도 좁고 불편한 마을, 죽은 이의 혼을 딛고 있으니 마음이 가시방석인데, 산동네에서 내려다보는 풍광은 넓고 시원하다.



‘피란수도 부산’ 투어는 이곳에서 마무리되지만 아미동 산복도로는 천마산 자락으로 계속된다. 산복도로 초입에 최민식갤러리가 있다. 대한민국 1세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최민식(1928~2013)은 한국전쟁 이후 부산의 모습, 특히 서민의 일상을 가감 없이 필름에 담아냈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가난만큼 진한 휴머니즘이 배어 있다. 생선 비린내 나는 손으로 아이를 안을 수 없어 가슴만 내밀어 젖을 물리는 어머니를 비롯해 가난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표정이 담겼다.

길을 따라가다 보면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이 바다를 내려다보는 조형물도 있고, 도심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도 여러 개 있다. 남부민동 부산항전망대에서는 바다 건너 영도가 한눈에 들어오고, 날이 좋으면 수평선 부근으로 일본 쓰시마까지 조망된다. 북항에서 영도대교, 남항, 영도 앞바다까지, 부산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이 커다란 강줄기처럼 흐른다.





부산여행특공대는 부산의 가치를 알리는 데에 공을 들이는 지역 여행사다. 손민수 대표는 스스로를 ‘손반장’이라 부른다. 부산 산동네를 훤하게 꿰고 있는 팔방미인이다. 투어를 진행할 때는 대표가 아니라 ‘진짜 부산 이야기’를 풀어내는 ‘이바구스트’다. ‘피란수도 부산’ 투어는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 부산역을 출발해 3시간 동안 진행된다. 부산여행특공대(busanbustour.co.kr)에서 예약할 수 있다.

부산=글·사진 최흥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