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받은 중국 "끝까지 응징한다"...무력 시위 더해 펠로시 제재키로

입력
2022.08.05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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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해협 중간선 넘는 등 이틀째 무력 시위
펠로시와 그 가족 제재 대상..."사악한 행동 응징"
ARF 열렸지만 눈도 안 마주친 미·중

중국이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2~3일)에 대한 보복 조치로 이틀째 무력 시위를 이어갔다. 펠로시 의장과 그 가족에 대한 제재 단행뿐만 아니라 양국 간 열려 있던 각 분야 대화 채널까지 단절했다. 군사, 외교, 경제 등 모든 분야의 수단을 총동원해 '하나의 중국' 원칙을 훼손한 시도를 끝까지 응징하겠다는 태도다.

중국 군함 10여척 대만해협 중간선 침범

대만 국방부는 중국군의 훈련 이틀째인 5일 "여러 중국 전투기와 군함이 대만 해협 주변에서 훈련을 벌였다"며 "이들은 대만해협 중간선을 넘었다"고 밝혔다. 로이터 통신은 "이날 오전 대만 해협 중간선을 넘어선 중국 군함과 군용기가 각각 10여 척과 20여 대"라고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쑤전창 대만 행정원장은 "옆집의 사악한 이웃이 우리 문 앞에서 힘을 과시하고 군사훈련으로 세계에서 가장 분주한 수로를 위태롭게 할 것이라곤 예상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중국군은 훈련 첫날이었던 전날 일방적으로 설정한 대만 주변 6개 구역에서 11발의 탄도 미사일을 발사했다. 일본 방위성에 따르면, 이 중 최소 4발은 대만 상공을 가로질러 바다에 떨어진 것으로 파악됐다. 중국군 미사일이 대만 상공을 관통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중국은 특히 대만 동부 해역에 대한 미사일 발사 훈련이 이뤄졌다는 데 주목했다. 관영 환구시보는 "대만 동부 바다 위의 표적을 목표로 한 발사는 대형 함정에 대한 사격 훈련"이었다고 평가했다. 대만 유사시 항공모함을 포함한 미군 지원 전력의 대만행 기동을 차단하는 훈련을 벌였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번 훈련은 중국의 예고대로 오는 7일까지 이어진다.

중국은 펠로시 의장 개인도 보복 대상에 올렸다. 중국 외교부는 펠로시 의장이 대만을 떠난 지 이틀째인 5일 "펠로시 의장은 중국의 심각한 우려와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만을 방문했다"며 "이는 중국 내정을 심각하게 간섭하고 중국의 주권과 영토 보전을 심각하게 훼손한 행위"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짓밟고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했다"며 "중국은 그의 사악하고 도발적인 행동에 대한 대응으로 중국 법률에 따라 펠로시 의장과 그의 직계 가족에 대해 제재를 가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중국은 구체적인 제재 내용에 대해선 밝히지 않았다. 중국 입국 제한, 중국 내 자산 동결, 중국 기업·개인과 거래 금지 등이 주요 내용일 것으로 예상된다. 펠로시 의장의 남편 폴 펠로시는 미국 뉴욕에서 성공한 부동산 사업가여서 남편의 사업상 불이익을 겨냥한 조치라는 해석도 나온다.

아울러 외교부는 양국 전구(戰區) 지도자 간 통화, 국방부 실무회담, 해상 군사안보 협의체 회의 등을 취소하는 동시에 불법 이민자 송환 협력과 형사사법 협력, 마약 퇴치 협력, 기후변화 협상도 잠정 중단한다고 밝혔다.

ARF서 미국과 눈도 안 마주친 중국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은 통상적으로 이뤄지던 강대국 간 대화까지 얼어붙게 했다. 4일(현지시간)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는 아세안 10개 회원국을 비롯해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장관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 주요국 외교장관들이 참석했다.

매년 8월쯤 열리는 ARF는 아세안과 아태지역 내 외교·안보 현안을 둘러싼 강대국들의 주요 소통의 장으로 활용되어 왔다. 하지만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 직후 열린 이번 회의에선 통상적으로 이뤄져 온 미중·중일 양자회담이 무산됐다.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왕 부장은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만나기를 거부했으며, 요시마사 외무장관과의 회담도 중국 측의 입장 변화로 성사되지 못했다.

왕 부장은 이날 저녁 프놈펜 크로이 창바르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외교장관 만찬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약 3분간 잠시 머무르다 이유를 밝히지 않고 만찬장을 떠났다. "만찬에 참석했다"는 '시늉'만 보인 셈이다.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왕 부장이 떠난지 4분 뒤 만찬장에 도착, 결과적으로 미중 장관은 이번 회의 내내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은 셈이 됐다.


베이징= 조영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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