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격적 대만 방문으로 중국 전투기까지 띄운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이 한국에서는 '만나지 않은 이들'로 뉴스가 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회담 불발은 차라리 “국익을 총체적으로 고려한 것”(최영범 홍보수석)으로 이해할 여지라도 있겠다. 펠로시 의장을 만나려던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씨가 과잉 경호로 병원에 실려가고, 공항에 한국 측 인사 누구도 영접을 나가지 않은 일은 정부의 오판과 무능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 이씨는 3일 밤 호텔에 이어 4일 낮 서울 여의도 국회 사랑재에서 펠로시를 기다렸다. 미 의회 위안부 결의에 따라 문제를 논의해 달라는 서한을 들고서다. 하지만 이씨는 국회 경호원들이 무리하게 휠체어를 당기는 바람에 넘어져 양발이 끌려 옮겨지는 봉변을 당했다. 국회는 “사전 약속 없는 면담 시도는 외교적 결례”라 했지만 그 시각 펠로시 의장은 김진표 국회의장을 만나 “위안부 결의안을 통과시킨 데에 자부심을 갖는다”고 말했다. 그런 그가 과연 이씨 면담을 마다했을까. 윤 정부는 ‘저자세 외교’ 비판을 감수하며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애쓰고 있는데, 그럴수록 국제 외교에서는 정당성 확보 노력을 해야 한다. 펠로시 의장과 이씨의 만남이 그 기회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 의전 홀대에 대한 여진도 이어지고 있다. 여야가 “외교 참사” “의전 책임은 국회”라며 떠넘기는 모습도 한심하다. 외교적 계산에 따라 회담을 피한 것이라면 의전만큼은 더 신경 써서 환대해야 마땅했다. 미국 측과 조율했다거나, 국회 책임이라 정부는 안 나가도 된다는 해명 모두 납득되지 않는다. 논란을 키운 것은 이날 윤 대통령이 연극을 관람하고 배우들과 술자리까지 가진 사진을 대통령실이 홍보랍시고 공개한 일이다.
□ 외신은 윤 대통령이 펠로시 의장을 "냉대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 기자는 “국제 사건, 외빈 방한, 정상회담, 외신기자 질문 등이 있을 때마다 윤 대통령과 참모진은 실수를 한다. 역량 부족이라는 증거가 쌓이고 있다”고 SNS에 써서 한국의 외교력을 꼬집고 있다. 외치의 실패는 내치의 실수보다 여파가 크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