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로시의 화룡점정

입력
2022.08.03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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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낸시 펠로시(가운데) 미국 하원의장이 2일(현지시간) 밤 대만 타이베이 쑹산공항에 도착해 환영 나온 인사들과 함께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낸시 펠로시(가운데) 미국 하원의장이 2일(현지시간) 밤 대만 타이베이 쑹산공항에 도착해 환영 나온 인사들과 함께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말레이시아 이륙 7시간 만인 2일 밤 타이베이 공항에 도착한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은 어둠에도 빛나는 핑크색 정장 차림이었다. 남중국해 길목을 막고 무력시위하는 중국군을 우회 비행한 82세 노정객은 대만에 당도하자마자 언론 기고를 송출했다. "시진핑 주석이 집권을 강화하면서 혹독한 인권 상황과 법치 무시가 계속되고 있다." 살벌한 경고를 쏟아내고도 막지 못한 미 권력 넘버3의 '대만 상륙'에 중국은 분노와 실망에 휩싸였다. 펠로시의 동료 의원은 "중국이 사람 잘못 골랐다"고 촌평했다.

□ 1995년 리덩후이 대만 총통 방미 국면에 이어 4차 대만해협 위기로 기록될 이번 사건은 펠로시의 35년 의정 인생에도 하이라이트가 될 참이다. 이탈리아계 이민자 후손으로 1987년 연방 의원에 당선돼 정계 입문할 당시 그는 고등학생 막내까지 5남매를 키우던 전업주부였다. 친구 지역구를 물려받은 47세 초선 의원은 에이즈 퇴치와 인권 수호를 당면 목표로 세웠고, 4년 뒤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유명한 희생자 추모 시위를 감행해 '대중 매파'로 급부상했다. 중국 최혜국 대우 반대, 달라이 라마 접견, 베이징올림픽 보이콧 촉구 등 부단한 행보는 중국엔 눈엣가시였다.

□ 노욕이란 의심도 있다. 11월 중간선거에도 출마를 예고한 펠로시가 대만 방문을 정치적 영향력 과시 기회로 삼았다는 것이다. 30년 전 CNN 베이징 지국장으로 펠로시의 톈안먼 시위를 취재하다가 공안에 체포됐던 마이크 치노이는 "그때와 달리 이번엔 상황이 악화될 경우 대만 국민과 미국 군인들이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바마 정부 주중 대사였던 맥스 보커스는 "바이든 대통령이 불쌍하다"며 정부 만류도 외면한 독단을 꼬집었다.

□ 다만 펠로시의 정치 역정에 비춰 대만 방문의 진정성은 의심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그는 3일 차이잉원 총통을 만나 "대만에 대한 (미국의) 약속을 절대 저버리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하고자 방문했다"고 말했다. 2008년 출간한 자서전에서 그는 책상에 액자 2개가 나란히 있다고 밝혔다. 하나는 테레사 수녀 말씀을 표구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톈안먼 광장에서 동료 의원들과 시위 현수막을 펼치던 사진이다.

이훈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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