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탈을 쓴 '쓰레기 산'

입력
2022.08.06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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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무심코 지나치다 눈에 띈 어떤 장면을 통해 우리 사회의 다양한 사연들을 소개하려 합니다. 시선을 사로잡는 이 광경, '이한호의 시사잡경'이 생각할 거리를 담은 사진으로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초록색 수풀이 우거진 언덕, 얼핏 보면 평범한 야산 같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악취가 진동한다. 드론을 띄워 내려다보니 수천 톤의 썩지 않은 쓰레기가 얼룩덜룩 정체를 드러내고 있다. 무성한 잡초넝쿨에 가려진, 그야말로 '쓰레기 산'이다.

지난 2일 인천 서구 수도권매립지 인근의 불법 폐기물 투기장을 찾았다. 2008년까지만 해도 평범한 공터였던 이곳에 그 이듬해부터 폐기물이 무단으로 버려지기 시작했다. 결국 2015년께엔 쌓이고 쌓인 쓰레기가 '산'을 이뤘다. 집게차와 대형 적재함까지 동원된 ‘쓰레기 쌓기’는 관할 지자체에 민원이 처음으로 제기된 2017년이 돼서야 겨우 멈췄다. 하지만 이미 1만t의 폐기물이 쌓여 있었다.

그 후 일부 처리되긴 했으나, 이곳에는 아직 8,000t이 넘는 쓰레기가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을 찾았을 때 그 규모가 전혀 실감나지 않았다. 십수 년간 쌓여 온 쓰레기 사이에서 뿌리를 내린 각종 잡풀과 넝쿨이 무성하게 자라 있었기 때문이다. '초록초록'한 잡초가 쓰레기 산은 물론 주변 적재함까지 휘감은 탓에 마치 자연이 쓰레기를 먹어치운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착각은 착각일 뿐, 수풀 사이로 듬성듬성 보이는 쓰레기는 엊그제 버려진 듯 조금도 빛이 바래지 않은 채 '쌩쌩'했다.




쓰레기 산이 조성되는 이유는 폐기물 무단 투기로 얻을 수 있는 이득에 비해 처벌이 턱없이 가볍기 때문이다. 통상 생활 폐기물을 무단 투기할 경우 지자체나 환경부에서 처리 조치명령을 내릴 수 있고, 이를 불이행하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진다. 사업장 폐기물 무단 투기는 7년 이하 또는 7,000만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진다. 그러나 법정 최고형이 실제로 내려지는 경우는 드물고, 취할 수 있는 부당이익은 크다. 폐기물 대량 투기로 인한 벌금이 통상 수백만 원대에 불과한 데 반해 투기로 인한 부당이익은 억대에 달하기도 한다.

지난해 불법 폐기물 투기를 집중 단속한 경기도 특별사법경찰단에 따르면 2,000여 t의 폐기물을 무단 투기한 업자가 1억 원이 넘는 부당이익을 챙겼고, 그보다 큰 2만3,000여 t을 무단 투기한 일당은 무려 18억 원에 달하는 수익금을 손에 넣었다. 아직 재판 중이지만, 이들에게 법정 최고형이 내려진다 해도 이미 챙긴 이익에 비해 가벼운 처벌이 내려지는 것이다.





중앙정부나 지자체가 쓰레기를 대신 처리하고 구상권을 청구하거나 부당이익에 대한 과징금을 부과할 수도 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이미 이 방면에 경험이 많은 '무단 투기 전문' 업자들은, 불법 투기로 발생한 수익금을 선제적으로 소진해 버리는 꼼수를 쓴다. 말 그대로 '배 째라'는 식이다. 국세를 체납하거나 복잡한 채무관계가 얽혀 징수 자체가 쉽지 않은 경우도 많다. 인천 쓰레기 산 부지 역시 단 한 차례도 매매 이력이 없지만, 압류와 근저당권 설정 내역이 수십 건에 달할 정도로 채무관계가 복잡했다. 경기도 특사경 관계자는 “(도에서 지출한) 쓰레기 처리 비용이 10억 원이라고 치면 무단 투기범한테서는 겨우 1억 원 회수하고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결국 이익금에 비해 한없이 적은 벌금을 부과하고 나면 실질적으로 꺼낼 수 있는 카드가 없는 셈이다. 지자체가 비용 회수를 포기하고 폐기물을 처리할 수도 없다. 투기범들을 그 지역으로 불러 모으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행정 딜레마에 빠져 있는 동안 썩지도, 사라지지도 않는 쓰레기 더미만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인천= 이한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