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 간 결혼에 부정적인 우크라이나 사회 분위기가 러시아 침공 이후 변화하고 있다. 성소수자들이 조국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들고 전장에 나가면서 이들에 대한 인식이 크게 바뀐 탓이다. 유럽연합(EU) 가입을 추진하는 우크라이나 정부 역시 동성 결혼 합법화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놓은 상태다.
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러시아의 침공이 우크라이나 내 동성결혼 합법화의 촉매제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총 들고 싸우는 성소수자들의 존재 자체가 동성결혼에 대한 부정적 인식 변화에 직접 영향을 끼친 게 컸다. 지난 5월 키이우국제사회학연구소가 2,000명을 대상으로 전화 설문한 결과에 따르면 성소수자에 대한 부정적 응답은 38%였다. 6년 전 약 60%에서 크게 줄어든 수치다.
2019년만 해도 퓨 리서치센터 조사 결과 동성애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응답이 69%에 달했던 데 비하면 분위기 반전을 이뤄낸 셈이다.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 성소수자 군인을 인솔하는 빅토르 필리펜코는 "우리는 목숨을 걸고 러시아군과 싸우면서 성소수자 혐오를 근절하고 있다"고 말했다.
성소수자 군인들의 발언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최근 우크라이나 정부에는 동성 커플도 이성 커플과 동등한 권리를 가질 수 있게 해달라는 청원이 잇따랐다.
해당 청원을 작성한 우크라이나 남부 자포리자 출신 영어교사 아나스타샤 소벤코(24)는 "이성애자 군인들이 전쟁에 나가기 전 파트너와 서둘러 결혼한다는 기사를 본 후 청원 글을 썼다"며 "동성 커플에게는 그런 선택지조차 없다는 데 슬픔과 분노, 좌절을 느꼈다"고 했다. 이 청원에는 3만 명이 '지지'의 뜻을 밝혔다.
커밍아웃하지 않은 성소수자 군인의 경우 유사시 파트너에게 자신의 소식을 알릴 수 없는데 대한 두려움을 갖는다. 남겨진 파트너는 보상금이나 시신 인도 등 아무런 법적 권리를 갖지 못한다. 키이우에서 성소수자 인권센터를 운영하는 안드리(52)는 "전쟁 중에 파트너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병원에서 그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며 "그가 나를 부를 수 있을 만큼 건강하지 않은 한 아무도 날 들여보내 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U 가입을 추진하는 우크라이나 정부도 동성결혼 합법화를 중요한 인권 과제로 인식하고 있다. 소수자 보호는 EU 가입의 주요 조건 중 하나로, 현재 모든 서유럽 국가는 동성결혼을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국민 대다수가 믿고 있는 정교회는 여전히 동성결혼에 부정적인 탓에 합법화까지는 갈 길이 멀다. "결혼은 남성과 여성의 자유로운 동의에 기초한다"고 명시한 헌법 개정도 필요하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동성 커플에 민법적 권리를 부여하는 '시민 파트너십' 합법화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둔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