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과 맺어지는 호랑이의 숙명

입력
2022.08.03 19:00
25면

한국 불교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신앙대상은 관세음보살이다. 드라마에서 승려 역할로 나오는 분이 종종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절에 안 다니는 분들은 스님들도 진짜 이렇게 염불하는 줄 안다. 그러나 사찰에서 이런 경우는 없다.

'남대문 안 가 본 사람이 가 본 사람을 이긴다'는 말이 있다. 가 본 사람이 남대문에는 문턱이 없다고 했더니, 안 가 본 사람이 '세상에 문턱 없는 문이 어딨냐?'고 해서 결국은 이겨 먹었다는 얘기다.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도 현실에는 없고 드라마 속에만 존재하는 스님의 특징일 뿐이다.

관세음보살이 제아무리 인기가 높아도 사찰에 모시는 전각은 한 곳뿐이다. 이는 우체국이 동네에 한 곳만 있는 것과 같다. 그런데 인기는 관세음보살에 못 미치지만, 절에 모시는 전각이 두 곳 있는 분도 있다. 그것은 지장보살이다.

지장보살은 돌아가신 분의 명복을 기원하는 구제의 보살이다. 오늘날에는 시대가 바뀌어 합동으로 천도재를 모시지만, 조선에서는 불가능했다. 조선 하면 떠오르는 대표 이미지가 '조상숭배' 인데, 어딜 감히 조상님 명복을 남과 합동으로 빌었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합동이 불가능하다면, 당연히 사찰은 지장보살을 모신 전각을 늘릴 수 밖에 없게 된다. 한 사찰 안에 같은 신앙대상을 두 곳에서 모신다는 건 누가 봐도 이상한 일지만, 그런 사연이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얘기를 한 건 지난 회(7월 14일자 '산사(山寺)에 새겨진 승려와 호랑이의 투쟁')를 잇는 속편 격으로 사찰과 호랑이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서다. 사찰에는 지장보살 외에도 호랑이 즉, 산신을 두 곳에 모시는 경우가 있다. 산신은 불교의 신앙대상도 아니다. 그런데 두 곳에서나 모셨으니 바꿔 말하면, 호랑이가 산사 승려들에게 얼마나 공포의 대상이었는지를 잘 나타내준다. 얼마나 무서웠으면 이렇게도 간절했겠는가!

인도에 가면, 대부분이 광활한 평야기 때문에 산신이 있을 곳이 없다. 북쪽의 히말라야에만 살고 있다고 보면 된다. 즉 히말라야는 일종의 산신 특구인 셈이다. 물론 히말라야 산신은 한국 산신처럼 얇은 옷이 아닌 등산복 같은 방한복을 입어야 할 것이다. 산이 희박한 호주의 아이들에게 산을 그리라고 하면, 낮은 언덕으로 그리는 게 전부다. 이쯤 되면 산신이 실직해서 이민 가는 건 당연하다.

우리나라는 전 국토가 산과 산맥으로 연결되어 있다. 덕분에 호랑이 관련 속담만 130개가 넘는 호랑이 천국이 된다. 호랑이가 '단군신화'에서부터 등장할 정도니, 더 말해 뭣하겠는가?!

'단군신화'에서 반항아 호랑이는 집을 나가고, 집 나간 호랑이는 마침내 1988년 서울 올림픽 때 호돌이로 금의환향한다. 반만 년 만의 화려한 귀환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이 호랑이는 30년 뒤인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늙은 백호 수호랑이 되어 다시 나타난다. 산업화 과정에서 얼마나 맘고생이 심했으면, 온몸에 흰털이 수북해졌을까 싶다. 그런데 곰 같은 마누라랑 살기 싫어 집 나간 호랑이가 사실은 사찰의 산신각에 숨어 있었다. 하기야 그래봤자 평창 올림픽에서 반다비라는 곰과 맺어지게 되니, 이것도 호랑이의 운명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호랑이는 산사에 오래 살다 보니, 특유의 용맹한 기상은 사라지고 반려동물처럼 애교 있는 모습으로 변모하게 된다. 이는 현존하는 모든 산신도의 특징이다. 그러나 사실은 이게 너무 무서워서, 호랑이에 대한 공포감을 누그러뜨리려고 일부러 희화한 결과임을 안다면 더욱 섬뜩하기 그지없다. 즉 극심한 공포가 만들어낸 '웃픈' 자화상이 산신도 속 호랑이에 숨어 있는 것이다.



자현 스님ㆍ중앙승가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