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의 반도체 장비 기업 ASML은 올해 2분기 현재 받아놓은 주문량이 사상 최대치를 찍었다. 세계적인 불황 우려로 반도체 수요는 줄고 있지만, 미래 생산능력을 늘리려는 삼성전자, 미국 인텔, 대만 TSMC 등 반도체 공룡들의 장비 주문이 몰리고 있어서다. 올해 2분기 ASML은 1년 전보다 35% 급증한 54억 유로(약 7조2,000억 원) 매출을 올렸는데, 이와 별도로 85억 유로(11조3,000억 원)어치 선주문도 새로 챙겼다.
□ ASML은 반도체 공정상 생산장비를 대는 하청업체지만 흔히 ‘슈퍼 을(乙)’로 불린다. 첨단 반도체 생산을 위한 초미세 공정에 반드시 필요한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반도체 웨이퍼에 빛을 쏴 회로를 새겨주는 기계)를 만드는 회사는 세계에서 이곳뿐이다. 삼성전자든, TSMC든 이 장비 없이는 첨단 제품을 못 만드니 웃돈을 부르며 줄을 선다. 이재용 부회장도 2020년에 이어 올해 6월 이 업체를 또 찾아 구애를 했다. 제품 주문을 하면서도 상전으로 모시는 모양새다.
□ 1984년 설립 이후 ASML은 부단한 노력 끝에 오늘의 독점 지위에 올랐다. 초기 반도체 노광장비는 캐논, 니콘 등 일본업체가 장악했다. ASML은 다국적 협력을 통한 기술혁신을 지속했다. 독일 렌즈업체 칼 자이스 등 전 세계 700개 이상 공급사에서 30만 개 이상 부품을 받아 장비를 만든다. 연쇄 도산을 막기 위해 한 회사로부터 매출의 3분의 1 이상은 공급받지 않는다. 매출 10% 이상을 연구개발비로 쓰면서 절반은 공급업체에 지원한다. 복잡한 노광장비를 다루기 어려워하는 고객사에 직접 직원도 상주시켜 도와준다. 쉽게 따라 하기 어려운 구조다.
□ ASML은 지난해 52%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 TSMC(41%), 삼성전자(31%)보다도 높다. 페터 베닝크 사장은 미국에도 중국에도 할 말을 한다. 바이든 행정부에 “중국에 대한 수출규제 시도는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라고 훈수하더니, 중국 면전에서 대만을 국가로 지칭하며 세금을 냈다고 밝혔다. 모두 대체 불가 기술을 갖고 있어 가능한 배포다. 미중 틈바구니에 낀 한국이 갖춰야 할 슈퍼 을의 파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