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관계가 8월 24일로 수교 30년을 맞았다. 겉보기엔 원숙한 단계로 올라섰지만 현실은 곳곳에서 삐걱대고 있다. 권병현 전 주중대사는 지난달 26일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올해 한국 새 정부 출범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3연임 결정이 맞물렸다"면서 "중국은 달라질 것이며 한국은 여기서 기회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전 대사는 1992년 수교 당시 막후 핵심 역할을 맡았다. 이후 1998~2000년 4대 주중대사를 지냈다. 그는 “윤석열 정부는 우리 현실을 냉철하게 직시해야 한다"며 "중국과 수천 년간 얽히고설킨 관계를 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권 전 대사는 갈수록 고조되는 미중 갈등과 관련 "현명한 산토끼는 굴을 하나만 파고 살지 않는다"면서 "우리가 스스로 확고한 동력에 의해 자신을 지켜낼 수 있을 때까지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평가했다. 그는 한국 청년들의 심각한 반중 정서에 대해서는 "기성세대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알려줘야 한다"고 당부했다.
_한중수교 당시 상황은.
“수교에 반대하는 세력이 한국뿐 아니라 중국에도 상당히 강했다. 북한 김일성이 살아있을 때다. 김일성이 반대하는 수교를 중국이 들어주리라고 상상한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중화민국(대만) 지지 기반이 한국에서 아주 탄탄할 때다."
_한국 내부 반발이 어느 정도였나.
“수교 서명식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했다가 5, 6명 패널 속에서 두들겨 맞았다. '왜 그렇게 서둘렀느냐, 대만을 헌신짝처럼 버렸느냐, 왜 극비사항으로 진행했느냐'고 했다. 수교가 역사의 흐름이고 대세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지만 당시 국민 정서는 그렇지 못했다.”
_30년이 지난 한중수교의 의미는.
“역사의 변곡점으로 보고 싶다. 1992년 8월 24일 수교를 전후한 남북한 관계나 한반도 주변 정세를 봐라. 북한과 혈맹을 깨고 '하나의 중국'을 인정할 테니 중국도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을 받아들이라고 한 것이다. 적이었던 중국이 우리의 가장 큰 경제 파트너가 되지 않았나.”
_미국이 중국을 거세게 포위하는데.
“중국이 주요2개국(G2)으로 부상할 것을 미국은 상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중국의 급부상을 미국은 도전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우리는 미국과 중국의 틈바구니에 들어간 것이다.”
_한중관계가 틀어졌는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사건으로 중국이 한국에 일종의 보복조치를 한 것이 흐름을 바꾼 계기라는 점에 동의한다. 하지만 1992년 한중수교는 인위적으로 막혔던 둑이 터진 것이다. 이 큰 흐름을 막을 수도 없으며 끊을 수도 없는 관계다. 현실은 끊임없이 역동적으로 변한다. 현실을 정확하게 보고 섬세하게 대처해 나가는 것이 한국의 생존전략이다.”
_한국 청년층에서 반중 정서가 확산되는데.
“한중 청년교류를 20년 넘게 하고 있는 입장에서 피부로 느낀다. 터닝 포인트는 사드였다. 사드 직전까지 중국에 대한 호감도는 일본을 추월해서 미국에 접근하는 정도까지 갔다. 하지만 사드 이후 급전직하했다. 한 번 끊겨져 내려간 뒤에 변곡점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기성 세대는 미래 세대에게 ‘이게 오늘날 현실이다’라며 편견 없이, 사심 없이 알 수 있게 해주려 노력해야 한다.”
_지난 5년간 문재인 정부의 대중 정책을 평가한다면.
“한중수교에 몸담았던 사람으로서, 한중수교라는 이 아이가 잘 자랐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가 왜 감정이 없겠나. (문재인 정부가) 나름대로 잘했다는 생각도 있지만 반대 생각이 없다고 하면 그것도 거짓말이다. 특정한 정권이 아니라 앞으로 이어나가는 우리 정부가 잘했으면 한다.”
_윤석열 정부는 어떤 대중 정책을 펴야 하나.
“가장 중요한 점은 우리의 현실을 냉철하게 직시하는 것이다. 우리가 어디까지 왔고 어느 변화를 거쳐서 어디로 가는지를 정확하게 진단해야 한다. 현시점에서 제대로 방향을 잡고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새 정부는 모든 편견을 버리고 분파적 관점을 초월해서 제대로 봐야 한다. 새 시각으로 새 대안을 만들고 포용력이 있는 정책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면 한번 더 도약할 기회가 올 것이다.”
_올가을 시진핑 주석 3연임이 결정된다. 중국이 바뀔까.
“중국 내부 사정에 관여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이번 당대회가 지나면 중국은 확실히 달라진다고 본다. 중국의 변화에서 우리는 기회를 찾아야 한다. 분명히 기회는 온다. 이 기회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며 놓쳐서는 안 된다. 한국의 미래에 상당한 영향을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