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영화 1, 2편은 꼬박꼬박 선보였다. ‘내부자들’(2015)과 ‘마스터’(2016), ‘백두산’(2019) 등 대부분이 흥행작들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그의 잦은 스크린 외출은 쉼표를 찍었다. 3일 개봉하는 영화 ‘비상선언’은 배우 이병헌이 ‘남산의 부장들’(2020) 이후 2년 6개월가량 만에 공개하는 신작이다. 지난달 28일 오후 화상으로 만난 이병헌은 “영화를 개봉하고 무대 인사하며 관객을 직접 만나던 일들이 제 삶의 일상이었는데 오랜만에 극장에서 관객을 다시 접할 생각을 하니 새삼 감사하다”고 말했다.
‘비상선언’은 항공재난 영화다. 한 사이코패스 범죄자가 하와이행 여객기 내부에서 생물테러를 가하면서 벌어지는 아비규환의 상황을 담고 있다. 마케팅비 등을 제외하고도 260억 원이 들어간 대작이다. 지난해 칸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초청돼 눈길을 모으기도 했다.
이병헌은 공황장애에 시달리는 중년 승객 재혁을 연기했다. 피부병을 앓고 있는 딸 아이 치료를 위해 힘겨운 항공 여행을 감내하는 인물로 재난 극복에 힘을 쏟는다. 이병헌은 20대 중반 공황장애를 극복한 사실이 최근 뒤늦게 알려져 화제를 모았다. 그는 “처음엔 원인을 알 수 없어 너무 괴로웠던 걸로 기억한다”며 “‘비상선언’ 출연을 결심하며 공황장애를 겪어보지 않은 사람보다는 잘 표현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비상선언’에는 중량감이 만만치 않은 배우가 여럿 출연한다. 송강호가 테러범을 쫓는 베테랑 형사 인호를, 전도연이 사고 대책을 진두지휘하는 국토교통부 장관 숙희를, 김남길이 여객기 부기장 현수를, 임시완이 범죄자 진석을 각각 연기했다. 이병헌은 “좋은 배우들과 협업하면 일단 굉장히 신이 나고 좋은 작품이 되겠구나라는 기대가 생긴다”며 “‘비상선언’을 촬영할 때도 동료 배우들이 큰 힘이 됐다”고 돌아봤다.
송강호와는 ‘밀정’(2016) 이후 6년 만에 스크린에서 재회했다. 이병헌이 특별 출연으로 잠깐 모습을 비쳤던 ‘밀정’과 달리 두 사람 모두 주연이다. 하지만 영화 속 두 사람의 위치는 여객기와 지상으로 각각 한정돼 있다. 원래 시나리오에는 둘이 연기 호흡을 맞출 장면이 아예 없었다. 이병헌은 “아쉬움이 커 촬영 들어가기 전 한재림 감독께 둘이 만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공했고 영화에 반영이 됐다”고 밝혔다.
1991년 데뷔 후 할리우드까지 진출하며 활동하다 어느덧 52세가 됐다. 액션과 멜로물에서 특히 두드러졌던 이병헌의 역할에도 최근 변화가 생겼다. ‘싱글라이더’(2017)와 ‘백두산’에서 아버지를 연기하더니 6월 종방한 tvN 드라마 ‘우리들의 해방일지’에선 중년 소시민 동석으로 변신했다. 화면 밖 삶도 10년 새 크게 달라졌다. 2013년 배우 이민정과 결혼한 후 아들 하나를 두고 있다. 이병헌은 “아들이건 딸이건 아이는 인생에서 굉장히 큰 선물”이라며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만큼 큰 행복감을 주는 건 없는 듯하다”고 말했다.
‘비상선언’은 전반부에는 재난에 방점을 찍는 반면 후반부에는 사람들 사이의 여러 감정을 더 탐색하려 한다. 이병헌은 “인간의 이기심, 인간이기에 할 수 있는 희생 등 인간성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영화”라고 설명했다. 대중보다 먼저 영화를 본 아내 이민정은 뭐라 했을까. “영화 보며 엄청 울었대요. 저보고 왜 슬픈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말 안 했냐고 하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