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 겸 당대표 직무대행이 31일 당대표 직무대행직을 사퇴했다. 이준석 대표의 당원권 6개월 정지 징계로 인해 권 대행이 지난달 11일 직무대행을 맡은 지 20일 만이다. 권 대행뿐 아니라 배현진·조수진·윤영석 최고위원도 줄사퇴하면서 국민의힘의 비상대책위원회 체제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비대위 체제 이후 당대표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 개최 시나리오가 언급되고 있지만, 벌써부터 비대위 성격을 둘러싼 당내 이견이 표출되고 있다. 더욱이 정권 출범 후 80여 일 만에 집권여당의 이례적인 비대위 체제 전환은 지지율이 20%대까지 하락한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에 적잖은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권 대행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여러 최고위원분들의 사퇴 의사를 존중하며, 하루라도 빠른 당의 수습이 필요하다는 데 뜻을 같이한다"며 "저 역시 직무대행으로서의 역할을 내려놓고 조속한 비대위 체제로의 전환에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권 대행에 앞서 이날 조수진 최고위원이 사퇴 의사를 밝혔고, 배현진 최고위원도 지난달 29일 사퇴했다.
권 대행의 사퇴는 비대위 체제를 요구하고 나선 최고위원들의 줄사퇴에 결국 두 손을 든 결과다. 조 최고위원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대통령실과 당의 전면 쇄신이 필요하다. 여당의 지도체제 전환은 이견 없이 신속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이른바 윤핵관이라 불리는 선배들도 총체적 복합 위기의 근본적 원인을 깊이 성찰해달라"며 "정권 교체를 해냈다는 긍지와 자부심은 간직하되, 실질적인 2선으로 모두 물러나 달라"고 촉구했다.
윤영석 최고위원은 권 대행의 직무대행 사퇴 이후 "국민의힘이 집권여당으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사퇴 행렬에 동참했다. 당연직 최고위원인 성일종 정책위의장도 "저는 현 정부와 당을 위해 직에 연연하지 않고 헌신할 각오가 돼 있다"며 사퇴 가능성을 시사했다.
권 대행은 지난달 28일 배현진 최고위원 사퇴 당시 "일부 최고위원이 사퇴했다고 비대위가 구성된 사례는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주말을 거치며 최고위원들의 분위기가 비대위 구성으로 급격히 쏠리면서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 9급 행정요원 채용과 관련한 실언과 윤 대통령의 '내부 총질' 문자 메시지 유출에 대한 책임 논란으로 '여당 원톱' 리더십에도 상처를 입은 상황이었다.
당내에선 최고위원들의 줄사퇴와 지난 29일 초선의원 32명의 비대위 전환 촉구 연판장 등 친윤석열계 의원들의 일사불란한 움직임은 '윤심'(윤 대통령의 의중)과 연관돼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 특히 배 최고위원 사퇴와 초선 연판장을 주도한 의원들이 윤핵관인 장제원 의원과 가까운 데다, 장 의원은 이 대표 징계 당시부터 비대위 체제 주장을 해왔기 때문이다. 국정 지지율이 20%대로 하락한 상황에서 지도체제를 둘러싼 내홍이 장기화할 경우 국정운영에 부담이 될 것이라는 판단도 작용했다. 이에 윤 대통령이 휴가(8월 1~5일)를 떠나기 전 상황을 정리하려는 물밑 움직임이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당 기획조정국은 다만 이날까지 비대위 체제 전환을 위한 당헌·당규 해석을 내놓지 않았다. 그러나 당에선 최고위원들의 줄사퇴에 따른 지도부 공백으로 비대위 전환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란 견해가 많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당헌·당규는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해석할 수 있도록 제정돼 있고, 당대표 직무대행조차 공석인데 비대위 전환을 반대할 명분이 없다"고 했다.
비대위가 꾸려질 경우 전당대회준비위원회(전준위) 성격을 띨 가능성이 크다. 집권여당이 정권 초 비대위 체제를 오래 끌고가기 부담스러운 만큼 차기 당대표 선출까지 '관리형' 비대위가 낫다는 것이다. 이 경우 전당대회 시기는 오는 9, 10월쯤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혁신형 비대위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조해진 의원은 "관리형 비대위는 당정이 직면한 위기의 심각성을 감지하지 못한 안일한 인식의 발로"라며 "법적으로 살아 있는 당대표를 강제로 몰아내는 전당대회는 당헌·당규 위반일 뿐만 아니라 법적으로도 문제가 될 수 있는 일종의 당권 쿠데타"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이견으로 비대위 체제 전환까지는 험로가 예상된다. 당장 '이준석계'로 분류되는 정미경, 김용태 최고위원은 비대위 체제에 반대하고 있다. 김 최고위원은 이날 "비대위 구성은 정치적 이유도 당헌·당규상 이유도 없다"고 반대 입장을 밝혔다. 한 국민의힘 중진의원도 "당이 대선과 지선을 연이어 승리하고 내부 사정으로 비대위를 꾸리면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그럼에도 벌써부터 정진석·정우택·조경태·주호영 등 5선 중진의원이나 김병준 전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 등이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다. 당대표와 직무대행이 부재한 상황에서 비대위원장 임명권이 누구에게 있는지는 또다른 논란거리다.
만약 10월까지 조기 전당대회가 열릴 경우 새 당대표 임기는 이 대표의 잔여임기(내년 6월)까지다. 김기현 의원 등은 임기와 상관없이 전당대회가 열리면 언제든 출사표를 던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여권 위기 속에 리더십을 인정받은 후 내년 6월 임기 2년짜리 당대표를 뽑는 전당대회에서 연임을 도모하겠다는 의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