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카카오가 카카오모빌리티 지분을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에 넘기기 위해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정보통신(IT) 업계가 시끄러웠습니다. 카카오모빌리티의 핵심 서비스인 '카카오T'는 카카오가 2015년부터 공을 들이며 키워온 핵심 사업이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매각 대상자가 사모펀드라는 말에 카카오모빌리티 임직원들과 이해 관계자들은 집회까지 열면서 반대 목소리를 냈습니다.
지난 18일 김성수 카카오 공동체얼라인먼트센터(CAC) 센터장과 배재현 카카오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카카오모빌리티 전 직원을 대상으로 진행한 간담회에서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카카오 공동체의 경영 방식과 수익 확대 등 사업 확장을 꾀하는 카카오모빌리티의 경영 방식이 맞지 않다"며 "카카오가 빠지는 것이 모빌리티 성장에 더 나은 결정이라고 생각한다"며 팔겠다는 뜻을 공식화했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만에 카카오는 돌연 지분 매각을 유보하겠다는 입장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카카오모빌리티 류긍선 대표가 카카오 측에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는 방안을 고민해 다음 달까지는 제출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카카오의 속마음은 훨씬 복잡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은데요. 일부에선 최근 '택시 대란'으로 모빌리티 시장에 대한 규제 강도를 낮춰도 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면서 카카오가 매각을 없던 일로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모빌리티 시장의 성장성과 업계에서 쌓아 온 입지를 생각하면 팔기는 아깝지만, 그렇다고 계속 가져가기에는 위험 부담이 큰 카카오모빌리티. 카카오는 현재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일단 왜 카카오가 카카오모빌리티를 매각하려 했는지부터 살펴보시죠. 카카오는 2015년 3월 택시 호출 서비스 카카오T를 시작으로 7년 동안 모빌리티 시장에 천문학적 비용을 투입했습니다. 길 위에서 기다리는 대신 앱으로 편하게 택시를 부를 수 있다는 혁신성 때문에 카카오T는 3,000만 명의 가입자와 월 이용자 1,000만 명을 확보한 국민 서비스가 됐는데요. 카카오모빌리티로 분사한 2018년 이후 매출은 매년 두 배씩 성장했고, 지난해 처음으로 흑자 전환(126억 원)에 성공했습니다. 앞으로 자율주행, 도심항공모빌리티(UAM) 등 기술이 발전할수록 사업 성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는 것이 많은 이들의 예상인데요.
하지만 카카오모빌리티가 승승장구할수록 예기치 못한 상황도 늘어났습니다. 기존 택시, 대리 운전 업계가 거세게 반발했고 이를 의식한 정치권이 규제 만들기에 나섰는데요.
카카오모빌리티는 2018년에 카풀 서비스에 나서려다 택시 업계의 강력한 반대에 밀려 사업을 접었습니다. 가맹 택시 대수가 늘어나면서 '콜 몰아주기' 논란도 확산했는데요. 공정거래위원회가 현재 관련 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전화 호출 대리 운전 업체들을 인수하면서 골목 상권 침해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또 택시 '스마트호출' 서비스를 도입하면서 요금을 올렸다가 택시 업계와 이용자들로부터 비판도 받았는데요.
결국 지난해 국정감사 당시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와 류긍선 카카오모빌리티 대표는 나란히 세 번이나 증인으로 출석했습니다. 당시 국감은 '플랫폼 국감'이라고 불렸는데, 플랫폼 사업자에 대한 독과점 폐해가 집중적으로 다뤄졌는데요. 특히 카카오와 카카오모빌리티는 비판의 한복판에 있었습니다.
김 창업자는 국감장에서 카카오의 사업 구조 개편을 다시 한번 약속했습니다. 그는 원래 '100인의 최고경영자(CEO) 육성'이란 경영 철학을 갖고 있었습니다. 기존 재벌 구조의 한계를 벗어나 각 계열사 CEO가 스타트업처럼 독립 경영을 하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보겠다는 뜻이었는데요.
개별 기업마다 서로 다른 철학을 바탕으로 사업을 하다보니 성장은 빨랐지만 문제도 컸습니다. 카카오모빌리티의 무리한 요금 인상이나 카카오페이 임원들의 스톡옵션(주식매수청구권) 행사 역시 그런 배경에서 발생한 문제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카카오는 독립경영 기조를 접고, 계열사 전반에 대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수 있는 '공동체얼라인먼트센터(CAC)'를 강조했습니다. 계열사별 주요 사업을 진행할 때 CAC의 판단을 거치는 시스템을 마련한 것입니다. CAC는 골목상권 침해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조직 개편에도 나섰는데요. 여론의 도마에 오른 사업은 정리하고 해외 시장에서 활약하는 콘텐츠 중심으로 인수합병(M&A)을 적극 추진하는 방향으로 전환했습니다. 5월 기준 카카오의 전체 계열사 136개 중 80여 개는 카카오엔터테인먼트와 카카오게임즈의 콘텐츠 제작 파트너입니다.
카카오모빌리티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익성을 개선하기 위해 요금을 올리려 하거나 신규 영역으로 사업을 확대할 때마다 택시, 대리운전 등 관련 업계의 반발이 예상됩니다. CAC는 논란이 자칫 그룹 전체로 확대되는 것을 경계하고요. 이에 카카오모빌리티가 CAC에 새로운 프로젝트를 제안할 때마다 CAC에서는 그 계획에 우려섞인 시각을 보낸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런 갈등이 이어지자 결국 카카오모빌리티가 카카오 그룹 안에 머물기 어렵겠다는 인식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김성수 CAC 센터장이 카카오모빌리티 임직원들에게 "카카오가 빠지는 것이 모빌리티 성장에 더 나은 결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핵심 이유입니다.
그렇다고 성장세가 예상되는 모빌리티 사업을 지금 정리하는 것도 쉽지는 않습니다. 카카오 입장에서는 MBK에 지분을 넘기면서 2대 주주 자리를 유지하겠다는 생각은 '일거양득의 묘수'였던 셈입니다. ①카카오모빌리티의 확장에 따른 논란이 전체 카카오로 확산하는 것을 MBK를 앞세워 차단하고, ②모빌리티 시장이 커지면서 얻게 될 열매는 2대 주주 자리를 통해 계속 누리겠다는 겁니다. 게다가 MBK가 사모펀드인 만큼 사업을 잘 해나기 위해선 카카오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라는 예상도 했죠.
하지만 협상이 끝나기도 전에 지분 매각 소식이 전해지면서 난감해졌습니다. MBK 역시 임직원들의 거센 반발에 당황하는 모양새입니다. 특히 카카오모빌리티 노조가 민주노총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과 함께 목소리를 내는 것에 큰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MBK는 2015년 홈플러스 인수 후 경영 효율화 과정에서 수년 동안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노조와 충돌을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가운데 최근 택시 대란이 발생하면서 모빌리티 시장에 대한 규제 완화 가능성이 나오고 있는데요.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최근 "조만간 최고의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모빌리티 혁신위원회를 발족하고, 8월에는 미래 모빌리티 혁신 로드맵을 발표해 비전과 구체적인 계획을 보여드리겠다"고 강조했습니다. 게다가 윤석열 대통령은 공약으로 플랫폼 사후 규제를 약속하기도 했습니다.
이러자 업계에선 '카카오가 굳이 카카오모빌리티를 팔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닌가'란 말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아직까지 모빌리티 산업에 대한 실질적 규제 완화책은 보이지 않죠. 택시, 대리 기사들의 반발이 예상되고 또다시 플랫폼 규제로 돌아설 수 있다는 우려도 여전합니다. 모빌리티 업체들은 택시 면허 없이 렌터카를 이용해 차량 공유 서비스를 제공했던 타다가 '타다 금지법' 제정으로 사업을 접는 과정을 봤기 때문이죠.
이에 업계에선 올가을 국회 국정감사가 정치권의 플랫폼에 대한 시각을 엿볼 수 있는 바로미터 역할을 할 것으로 주목하고 있습니다. 또다시 국회가 김범수 창업자 등 카카오 최고경영진을 국감장으로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면 플랫폼 규제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의지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죠.
결국 카카오는 시간을 두고 카카오모빌리티 매각을 다시 검토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이에 업계에서는 다음 세 가지 이슈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①카카오모빌리티가 8월 중 내놓을 상생 방안과 ②8월 공개하는 국토부의 미래 모빌리티 혁신 로드맵 ③9월 열리는 국감 상황까지 지켜보고 카카오가 모빌리티 사업을 안고 갈지, 지분 매각을 진행할지 결정할 것이라는 예상입니다.
익명을 요구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카카오는 모빌리티 사업을 가지고 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골목상권 논란에 대한 부담 때문에 매각을 고민하고 있다"며 "외부 환경이 달라질 경우 매각을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여지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