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히고 또 찍혀도... 반복되는 정치인의 문자 노출 사고

입력
2022.07.30 18:00
기자가 의원석 위에서 내려다보며 찍는 본회의장 구조
휴대폰·카메라 기술 발달로 문자 내용까지 상세히 찍혀



여당 대표가 대통령과 주고 받은 휴대폰 메신저 화면이 사진기자에 의해 포착, 공개되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 '내부총질'을 언급한 대화 내용뿐 아니라, 해당 대화창을 국회 본회의장에서 띄운 권성동 국민의힘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의 행동이 단순 실수였는지 고의였는지를 두고도 정치권에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26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촬영된 권 대행의 휴대폰 텔레그램 화면을 보면, 오전 11시 19분 윤석열 대통령이 권 대행에게 "우리 당도 잘하네요. 계속 이렇게 해야"라고 보낸 뒤, 11시 40분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가 바뀌니 달라졌습니다"라는 메시지를 추가로 보냈다. 권 대행은 15분이 지난 11시 55분 "대통령님의 뜻을 잘 받들어 당정이 하나 되는 모습을 보이겠습니다"라고 답했다.

휴대폰 대화창 노출이 단순 실수였다는 주장은, '내부총질'이라는 표현이 가져올 정치적 파장을 권 대행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촬영 당시 입력창에 '강기훈과 함께'라는 글을 쓰고 있었던 점을 그 근거로 든다. 권 대행이 뭔가를 급히 보내려다 주변 경계를 깜빡했을 것이라는 추론이다.

그러나, 대화를 주고 받은 지 4시간 30분이나 지난 오후 4시 13분에, 더구나 사진기자들이 곳곳에 포진한 국회 본회의장에서 해당 대화창을 다시 열었다는 점에서 단순 부주의가 아니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4선으로 정치 경력이 짧지 않은 권 대행이 휴대폰 화면이 잘 보이는 의석 뒤편 위층에 사진기자들이 위치하고 있음을 몰랐을 리 없다.

이처럼 '의도적 유출'인지 '우연한 노출'인지, 당사자만 진실을 알고 있는 휴대폰 화면 노출 논란은 과거에도 정치권에서 심심찮게 벌어져 왔다.

2016년 11월 국정농단 사태 당시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충성충성충성 장관님 사랑합니다 충성"이라고 보낸 카카오톡 대화 화면이 공개됐다. 박 위원장이 이 대표를 '박근혜 비서'라고 비꼰 데 대한 이 대표의 항의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다. 해당 문자를회 본회의장에서 열어 보면서 언론 노출의 빌미를 제공한 박 위원장은 이후 이 대표에게 공개 사과를 하기도 했다.



2020년 1월에는 추미애 당시 법무장관이 "지휘감독권한의 적절한 행사를 위해 징계 관련 법령 찾아보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장관정책보좌관에게 보내는 장면이 사진기자에 의해 포착됐다. 누가 봐도 추 장관이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됐다.

2020년 9월 국회 본회의장에서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교섭단체 대표연설 기사가 포털사이트 다음의 메인 뉴스로 노출되자, 당시 과방위 소속이던 윤영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거 카카오에 강력히 항의해주세요. 카카오 너무하군요. 들어오라 (하세요)"라는 메시지를 보좌진에게 보내는 장면이 사진기자들에 의해 포착됐다.

이로 인해 여당 의원의 갑질 논란이 일었고, 국민의힘은 윤 의원의 과방위 사임을 요구했다. 윤 의원은 결국 "여야 대표연설의 포털 노출 과정의 형평성에 의문을 가졌던 것"이라면서도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 밖에도 국회 본회의장에서는 휴대폰으로 정치 행위와 무관한 행위를 하다 구설수에 오른 경우가 적지 않았다.

국회 본회의장에서 정치인들의 문자 메시지나 SNS 등이 카메라에 자주 포착되는 이유는 선 수에 따른 의석 배치와 사진기자 취재 구역의 특수성 때문이다. 사진기자들은 의원석 출입이 불가능한 대신 의원석을 뒤와 옆에서 내려다 볼 수 있는 위치에서 취재활동을 한다. 주로 의원들의 뒤쪽 위에서 내려다 보기 때문에 휴대폰 화면을 용이하게 포착할 수 있는 조건이다.

또한, 의장석을 중심으로 부채꼴로 배치된 의원석은 다선 의원일 수록 뒷좌석으로 배정되다 보니, 여야 지도부 및 중진급 의원들이 사진기자들의 촬영 사정거리에 주로 들게 된다. 10m 남짓 떨어진 위치에서 초점거리 400㎜ 정도의 망원렌즈를 이용할 경우 비교적 선명한 화질로 의원들의 휴대폰 화면을 촬영할 수 있다.

여기에 갈수록 밝고 선명해지는 휴대폰 화면, 노안 때문에 점점 커지는 글자 크기, 이를 제대로 표현해 내는 카메라 기술의 발전까지 겹치면서 정치인의 휴대폰 '문자 정치'는 그 파급력을 더해가고 있다.


국회를 출입하는 사진기자들은 국회 본회의가 열리면 여야 지도부를 비롯한 중진급 의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면밀히 살펴본다. 특히, 본회의에서 여야가 첨예하게 맞서거나 주요한 법안 처리를 앞둔 상황에서 당 지도부 중 누군가 휴대전화를 꺼내들고 안경을 썼다 벗었다 한다면, 사진기자들은 분주해진다. 휴대폰 화면에 담긴 메시지가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가능성이 항상 존재하기 때문이다.

정치 경험이 오래된 의원들 중엔 사진기자들의 이 같은 속성을 알고 일부러 휴대폰 화면을 노출하는 경우도 있다. 반면, 이번 윤-권 텔레그램 메시지 사태를 교훈삼아 사진기자의 앵글을 피해 휴대폰 메시지를 확인하는 새로운 풍속도도 국회 본회의장에 생겨났다. 27일 국회 대정부질문에 출석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사진기자들 쪽으로 등을 돌린 채 구부정한 자세로 휴대폰을 책상 밑으로 내려서 메시지를 확인했다. 당분간 국회 본회의장에서는 이와 비슷한 자세로 휴대폰을 확인하는 장면이 심심찮게 목격될 것으로 예상된다.



고영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