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성향으로 기운 미국 연방대법원에서도 특히 '강성 보수'로 분류되는 클래런스 토머스 대법관이 10년 넘게 강의한 로스쿨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임신중지권(낙태권)을 폐기하는 등 그의 최근 퇴행적 판결에 학생들이 반발하면서다. 법조인 지망생들이 대법관의 강의를 보이콧한 것은 미국 대법원의 신뢰도가 추락했다는 뜻이다.
대학 측은 "해고는 없다"는 입장이지만, 토머스 대법관은 올해 가을 학기 강의를 반납하며 궁지에 몰렸다. 미국 사상 두 번째 흑인 대법관인 그는 '아버지 부시'인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의 추천으로 1990년 대법관에 취임했다.
27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미국 워싱턴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은 토머스 대법관이 헌법 세미나 수업을 맡지 않는다고 공지했다. 수업을 공동 진행할 예정이던 그레고리 맥스 교수는 학생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혼자라도 수업을 하겠다"고 했다.
토머스 대법관은 2011년 워싱턴대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최근 들어 "학교에서 물러나라"는 학생과 임직원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그의 최근 판결들이 소수자의 기본권을 빼앗고 환경을 위협한다는 이유에서다.
토머스 대법관은 올해 6월 임신중지권을 인정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폐기하는 데 가담했다. 판결문 보충 의견에 "동성 결혼권과 피임권을 보장하는 판례들까지 다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적어 논란이 일었다. 또 미 연방환경청(EPA)의 온실가스 감축 지시 권한을 제한하고 총기 소지 자유를 강화하는 등 대법원의 보수화에 앞장섰다.
지난해 발생한 '1·6 의사당 난입 사태'에 배우자가 연루돼 대법관의 중립성을 의심받게 된 것도 화를 키웠다. 보수 운동가인 배우자 지니 토머스가 2020년 대선이 사기라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주장을 지지했다는 사실이 최근 드러난 것. 1·6 폭동 조사위원회에 따르면, 지니는 대선 직후 트럼프의 당시 비서실장에게 문자를 보내 "위대한 대통령(트럼프)이 건재할 수 있도록 도와줘"라고 촉구했다. 진보 진영은 "(지니가) 현직 대법관의 부인임에도 정치적 중립을 완전히 무시했다"며 남편 토머스 대법관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워싱턴대 학생회는 이달 초 토머스 대법관의 해고를 요구했다. 학생회는 학교에 보낸 서한에서 "토머스 대법관은 여성이 의료 처치를 받을 권리를 빼앗고, 성소수자들이 합법적으로 존재할 권리를 박탈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달 말엔 1만1,300명에 달하는 학생과 임직원이 그의 수업 취소와 해고를 요구하는 청원에 참여했다. 대학 측은 "다른 모든 교수진처럼 토머스 대법관에게도 학문·표현의 자유가 있다"며 거부했다.
토머스 대법관의 수업 취소 소식에 학생 사회는 축제 분위기라고 미 워싱턴포스트(WP)는 전했다. 워싱턴대 국제정치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존 케이는 "그가 가을에 수업을 할 거라고 예상해 반대 시위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철수 소식에 놀랐다"며 "우리는 그가 다음 봄학기에도 돌아오지 못하도록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