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방송이 경찰 얘기로 떠들썩한데... 너 경찰 담당이라고 안 했니? 넌 괜찮은 거지?"
며칠 전 밤늦은 시간,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경찰국 논란으로 온 나라가 1주일 넘게 시끄러우니 걱정이 되셨나 보다. "일이 좀 많아졌을 뿐 저와는 직접 상관없다"고 전화를 끊고 나니 가슴이 찡했다. 경찰을 취재하는 아들이 혹시 무슨 불이익을 받을까 노심초사하는 게 부모 마음인데, 실제 경찰 자식을 둔 심정은 오죽하겠나 싶었다.
경찰청은 행정안전부의 경찰국 신설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는 '총경회의(경찰서장 회의)'를 주도한 류삼영 총경을 즉각 대기발령 냈다. 회의 참가자들도 감찰 대상이다. 경찰청은 '공무원은 직무 수행 시 소속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국가공무원법 제57조와 '공무원은 집단·연명으로 또는 단체 명의를 사용해 국가 정책을 반대하거나 수립·집행을 방해해선 안 된다'는 국가공무원 복무규정 제3조를 근거로 내세웠다. 경찰청이 총대를 메자 하루 뒤 기다렸다는 듯 이상민 행안부 장관이 보조를 맞췄다. 이 장관은 총경회의를 '쿠데타', 주도 세력을 '하나회'에 빗댔다. 며칠 뒤엔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치안감 인사 번복 사태 이후 두 번째로 "국기문란"을 언급했다.
더불어민주당이 '검수완박'이라 불린 검찰청법 등의 개정안 처리를 주도할 때 검사들이 잇따라 회의를 열어 집단 반발했던 게 3개월 전이다. "경찰서장 회의는 안 되고 평검사·검사장 회의는 되느냐"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이 장관은 "평검사 회의 땐 금지나 해산 명령이 없었다"고 했다. 검사들이 국가 정책에 반대하는 회의를 연 건 맞지만, 소속 상관이 허락했으니 문제없단 의미다.
이 논리대로면 경찰청장(후보자)을 비롯한 경찰 수뇌부가 경찰국 신설에 반대하고 총경회의를 지지했다면 이 역시 괜찮다는 얘기다. 부질없는 가정이긴 하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직후 임명된 경찰 최고위급인 치안정감 6명은 이번 사태에 일제히 침묵했다. 경찰국 신설에 대한 암묵적인 동조였다. "경찰 수뇌부는 단 한 번도 현장 경찰의 편이었던 적이 없다"는 한 총경 출신 퇴직 인사의 쓴소리가 생각났다.
또 다른 가정도 해 봤다. 검수완박 국면 때 법무부 장관이 검사 회의를 못 하게 막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국가공무원법과 복무규정은 경찰뿐 아니라 검사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총경회의와 동일한 잣대를 들이댄다면 검사 회의를 주도한 자와 참가자도 징계 대상이다. 물론 이런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다.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당은 검찰의 집단 행동을 강하게 비판했지만 정부가 앞장서 회의 금지령을 내리진 않아서다.
무엇보다 자기가 몸담은 조직의 중대한 변화에 대해 의견을 표명하려고 모이는 행위가 공무원 규정까지 살펴 위법·불법인지 따져봐야 할 정도의 사안인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총경들이 총칼을 차고 당장 서울로 진격할 태세를 갖춘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번 일을 통해 윤 정부가 '(검찰을 제외한)' 공무원 사회에 명확한 메시지를 던졌다고 볼 수밖에 없다. 바로 정권의 심기를 거스르는 회합은 꿈도 꾸지 말라는 거다.
장관의 '쿠데타' 발언 이후 경찰 내부망은 "회의도 못 합니까?" "의견 제시도 안 됩니까"란 항변으로 들끓었다. '검로경불(검찰이 하면 로맨스, 경찰은 불륜)'이란 신조어가 탄생하고, '내가 하면 집단적 의사 표시, 남이 하면 쿠데타'란 비아냥이 왜 회자되는 지 대통령과 장관은 곱씹어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