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잠잠하던 국민의힘 차기 리더십을 둘러싼 물밑경쟁이 수면 위로 떠오를 조짐이다. 지난 8일 이준석 대표에 대한 ‘당원권 6개월 정지’라는 사상 초유의 현직 당대표 징계사태를 맞아 권성동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 체제가 출범했지만 또다시 불안한 모습을 연출하면서다. 권 대행과 윤석열 대통령이 나눈 사적인 문자메시지가 26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사진기자에게 포착되는 ‘대형사고’가 터지면서 잠재된 논쟁들을 다시 건드린 것이다. ‘대통령 윤석열’로 표시된 발신자는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대표가 바뀌니 달라졌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낸 게 확인됐다. 이준석 대표 징계 사태와 관련해 “당무를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거리를 뒀던 윤 대통령을 당혹스러운 처지로 권 대행이 몰아간 결과가 됐다.
이번 사태로 ‘윤핵관’(윤 대통령 핵심 관계자) 중 핵심인 권 대행의 입지가 갈수록 흔들릴 경우 집권세력 내 이너서클의 변화로 이어질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현재 여당의 원톱이자 잠재적 차기 당권주자인 권 대행은 지난 11일 의원총회에서 직무대행체제를 추인받으며 조기에 당대표 공백 수습에 나섰다. 하지만 지도체제를 둘러싼 이견이 이어진 데 더해 대통령실 ‘사적채용’ 논란을 방어하는 와중에 내놓은 부적절한 언급, 또 다른 윤핵관 장제원 의원과의 불화설 등으로 당을 안정시키는 데 실패하고 있다. 장 의원이 '조기 전당대회론'에 선을 그으며 일단 권 대행 체제에 힘을 실어줬고, 당권주자인 안철수 의원도 가세하면서 지도체제 논쟁은 수면 아래 잠복한 상황이었지만 권 대행이 ‘문자노출’ 사건으로 스스로 발목을 잡은 셈이다.
이에 따라 직무대행체제로 6개월을 가는 건 무리라는 조기 전당대회론이 힘을 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윤핵관 중 양대 축인 권 대행과 장제원 의원 간 균형이 깨질 수 있다는 얘기다. 장 의원은 애초 차기 전대를 빨리 치르자는 쪽이라 임시체제를 가동하는 권 대행과 생각이 다르다. 이런 기류는 2008년 쇠고기 사태 직후 청와대 조직개편을 단행한 이명박 정부의 사례를 보듯, 윤 정부가 어떤 식으로든 국정쇄신의 계기를 잡지 못하면 집권 초 낮은 국민 지지도가 고착화할 위험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대통령과 당 지지율 동반하락을 두고 당내 위기감은 극에 달한 상황이다. 이미 조기 전대를 대비한 물밑 움직임이 활발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원은 27일 “여름을 통과하면서 이준석 대표에 대한 경찰수사가 마무리되고 기소될 가능성이 변화의 출발점”이라며 전면적인 지도부 쇄신을 주장했다. 이 의원은 “경찰에서 성 상납 의혹 관련 결과가 나오면 당 윤리위가 또 열려 대표직이 정리될 것”이라며 “권력은 부자지간도 균점이 안 된다. 권 대행과 장 의원 간 윤핵관 분화라기보다 자연스러운 선의의 경쟁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전당대회로 새로운 기풍을 세우고 다양한 피를 수혈받는 장이 마련돼야 한다. 그 과정에서 여당과 대통령실이 대국민 어젠다를 내보여야 할 것이다. 역대 정권을 보더라도 YS는 군정종식, DJ는 외환위기 극복, 노무현은 국민참여정치, 이명박은 4대강 사업, 박근혜는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고 했지만 우리는 그게 없었다. 집권당 리더십부터 당장 세우는 게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선 더불어민주당이 8월 전당대회 후 이재명 대표 체제로 개편돼 대여투쟁에 나설 확률이 높다는 점에서 여당도 새 간판을 세워 강대강 정국에 맞서야 한다는 이유를 대기도 한다.
당권주자로는 안철수, 김기현 의원이 보폭을 넓히며 세 불리기에 한창이다. 경쟁적으로 당내 모임을 주도하며 사실상 당권 레이스를 시작했다. 윤핵관 그룹과 당권주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연대하느냐가 관건이다. 장제원 의원과의 관계를 두고 ‘간장연대’(안철수-장제원), ‘김장연대’(김기현-장제원) 시나리오가 나오는가 하면 최근엔 ‘철권연대’(안철수-권성동) 신조어도 생겨났다. 한 차례 무산된 친윤계 의원 모임 ‘민들레’(가칭)도 내달 발족을 목표로 재시동을 걸고 있다. 대표격인 장제원 의원은 잡음을 피해 불참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참여 의사를 밝힌 의원만 65~70명이라 최대 파워그룹으로 부상 중이다.
안 의원은 정치적 색깔을 부쩍 드러내고 있다. 26일 페이스북에 “‘김경수-드루킹 댓글조작 사건’은 세계민주주의 역사상 대선기간 여론을 조작한 민주주의 붕괴사건”이라고 김 전 경남지사의 사면 가능성을 반대하며 보수층 결집과 존재감을 어필했다. 국민의당 몫으로 추천했지만 이준석 대표가 반대했던 최고위원 2인도 선임돼 정치적 성과물도 챙겼다. 그의 토론회에는 1차 때 의원 50여 명, 2차 35명, 3차 29명이 몰렸다. 장제원 의원과 연대설이 나온 배경은 대선 때 윤석열-안철수 단일화 담판이 서울 강남에 있는 장제원 의원의 매형 집에서 이뤄졌다는 대목이다. 장 의원 매형이 안 의원과 인연이 있었던 탓이다. 이 때문에 당내 기반이 약한 안 의원이 대표를 하면 실세 사무총장을 장 의원이 맡는 시나리오가 나돌았지만, 현재는 김기현 의원과 장 의원의 연대 가능성도 함께 열려 있는 상황이다.
김기현 의원은 대표 직무대행 체제에 부정적이다. 김 의원은 문자노출 파문에 대한 언론의 질문에 “(사적인) 문자를 공개하는 일이 좋은 일은 아니겠죠”라고 말해 권 대행의 책임을 부각하는 취지로 풀이됐다. 그는 최근 “이준석 대표가 6개월 후 복귀하면, 내부 갈등은 더 커진다”며 조기 전대 필요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 그는 이날 자신이 주도하는 ‘새미래’ 네 번째 모임을 갖고 강연자로 원조 ‘친윤’ 권영세 통일부 장관을 초청하기도 했다. 김 의원은 직전 원내대표 출신인 데다 의원들의 평가가 좋아 당장 전당대회를 치를 경우 당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
나경원 전 의원도 등판이 예상된다. 나 전 의원은 이날 통화에서 “당헌당규가 있는데 억지로 조기 전대를 치르는 건 반대다. 당 지지율이 안 좋은데 이런 언급을 하는 게 불편하다”면서도 당대표 출마 가능성을 부인하진 않았다. 이 대표에 대해선 “여당 대표는 대통령이나 당을 신뢰감 있게 만들어 가야 하는데 늘 총부리를 밖이 아닌 내부를 향해서 우리가 걱정했던 게 많지 않느냐”고 비판을 이어갔다. 보수층 전반에 고정표가 많은 그가 출마하면 범친윤 진영이 택할 경우의 수는 더욱 복잡해진다.
당 관계자는 “안 의원은 당내 세력이 부족해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지만, 김 의원은 현 직무대행체제가 흔들릴 때 빨리 당내 선거를 치르는 게 유리하다”며 “전면에 내세울 얼굴이 약한 친윤 입장에선 대권주자인 안 의원은 좀 빠르고 김 의원이나 나 전 의원을 우선할 수도 있다. 윤핵관들이 누구와 손을 잡을지 경찰 수사결과 발표 두 달 내 윤곽이 잡힐 것”이라고 말했다. 차기 당권이 ‘윤심’에 따라 판가름 날 것이란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윤핵관 내 갈등에 대해 “윤 대통령이 당에 뿌리가 없다 보니 정리가 안 돼 이런 식으로 기성 정치인 간 갈등이 표면화한 것”이라며 “정상이라곤 할 수 없지만 일사불란한 게 꼭 민주적 정당의 모습은 아니다. 영국이나 일본도 계파와 파벌 덕분에 민주주의가 성숙되고 유지되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한 수도권 의원은 “임기 초 집권당 당권은 대통령 의중에 달려 있다”며 “이런 때 대통령이 정교하게 역할을 정리하고 유도하는, 이른바 가르마를 타주는 스타일이 있고, 아니면 대놓고 얘기를 하는 직설적 리더십으로 나뉘는데 전자는 과거 DJ였고 후자는 YS였다”고 비유했다. 이 의원은 “문자메시지로 ‘내부 총질’을 언급했다는 점에서 윤 대통령이 어떤 성격의 리더십, 어떤 인물을 선호하는지 윤핵관 움직임을 통해 향후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다른 인사는 “당과 인연이 없는 윤 대통령 입장에서 여당을 직할체제로 가져가려면 자신처럼 당내 기반이 없거나 약한 사람을 내세우고, 기성 정치인을 통해 견제하는 게 설득력 있는 시나리오”라며 “대다수 의원들은 일단 ‘간장연대’ ‘김장연대’ ‘철권연대’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발을 걸쳐 놓으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