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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관련 가장 먼저 떠올리는 직업 중 하나는 수의사, 이 가운데서도 반려동물 수의사다. 반려인들이 가장 쉽게, 자주 만나는 직업이기도 하다. 직업으로서 수의사의 인기도 높다. 교육부가 매년 발표하는 '초⋅중등 진로교육 현황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초등학생과 중학생 희망 진로에서 각각 12위와 20위를 기록했다.
동물을 좋아한다고만 해서 수의사가 될 수 있을까. 15년 동안 반려동물을 진료해 온 박정윤 수의사는 "수의사는 동물의 건강을 돌보는 것뿐 아니라 이들이 원하는 것과 이들에게 필요한 것을 찾아내는, 동물을 위해 힘쓰는 직업"이라고 말한다. SBS 'TV 동물농장'에 이어 '와일드 썰', '하하랜드', '굿모닝 FM' 등 동물 관련 방송에 꾸준히 출연하면서 반려동물 수의사로 이름을 알린 박 수의사를 서울 종로구 올리브동물병원에서 만났다.
-고등학교 시절 문과였고 다시 수학능력시험을 치러 수의학과에 진학했는데 계기가 있었나.
"고등학교 때 수학을 못해 단순히 문과를 선택했고, 수능 점수에 맞춰 대학에 진학했다. 대학에 들어온 뒤에도 전공과목을 공부할 의지가 없었다. 워낙 동물을 좋아해 동물 관련 일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수의대로 진학하게 된 계기는 23년 전 공원에서 만난 반려인이다. 한 사람이 오토바이를 탄 채 개를 끌고 가고 있었는데 개가 너무 힘들어 보였다. 보호자에게 주의를 줬더니 '뭔데 상관이냐'고 따지더라. 반사적으로 '수의사'라고 했더니 잘못을 인정했다. 수의사라면 동물을 위해 목소리를 낼 수 있겠다 싶었다.”
-수의학과에 들어오고는 바로 적응했나.
"운 좋게 입학했지만 귀여운 동물과 함께 할 수 있을 거란 기대와 달랐다. 해부 등 실습을 하는 게 힘들었고 병들거나 죽은 동물을 본 뒤 불편한 마음을 해결할 방법도 없었다. 성적도 좋지 않았고 결국 휴학까지 했다. 하지만 마음을 고쳐먹고 복학해 졸업이라도 하자고 버텼다.
수의대생 가운데는 실습에 동원된 개를 데려다 키우는 경우가 많다. 매일 눈을 마주치고 밥을 주는 개에게 마음을 주게 돼서다. 최근엔 대체실험도 늘어나는 등 실습 환경이 점차 개선되고 있어 다행이다."
-수의사 하면 동물병원만 떠오르는데 실제 어떤 일을 하나.
“수의사가 활동하는 범위는 생각보다 넓다. 임상수의사 중에는 반려동물뿐 아니라 농장동물, 야생동물을 진료하는 이들도 있다. 또 연구원, 공무원으로도 활동한다. 내가 속한 소동물 임상수의사는 동물을 신체적, 정신적으로 치료하는 것은 물론이고 동물 복지를 위해 힘쓴다.
사람과 동물의 이익이 대치될 때 동물 편을 들어주는 사람도 있어야 하지 않겠나. 최근 개물림 사고가 났는데 (조심스럽긴 하지만) 무조건 개를 비난하기 보다 개가 자란 환경, 길러진 방식 등을 먼저 생각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반려동물 수의사지만 사육곰을 위한 활동도 하고 있는데.
"2019년 사육곰 구조활동을 하는 곰보금자리프로젝트를 통해 사육곰 실태를 알게 됐고 충격을 받았다. 실제 농장 속 곰을 보고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살도록 두는 게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무력감을 느꼈지만 그래도 곰을 위해 수의사로서 도움이 되자는 생각에 곰보금자리프로젝트에서 활동하게 됐다."
-수의사로 일하면서 힘든 점은.
"몸이 아픈 동물은 말을 못하니까 치료를 결정하는 일은 보호자의 몫이라는 게 힘든 점이다. 동물과 보호자를 모두 상대해야 하는 것도 힘들 수 있다. 보호자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고, 그 안에서 원인을 찾고 보호자에게 필요한 치료를 이해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 잘못하면 치료할 기회조차 잃을 수 있다. 이런 점 때문에 수의사는 동물뿐 아니라 사람도 좋아해야 한다.
수의사는 의사와 다르게 진료 범위가 넓다. 안과, 피부과 등 전문분야가 생기고 있지만 수의사는 동물환자의 전반적인 상태를 알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끊임없이 노력하고 공부해야 한다."
-말 못하는 환자를 대하는 게 쉽지는 않을 텐데 노하우가 있나.
"특별한 노하우는 없다. 다만 '일반화'를 경계한다. 모든 개, 고양이는 감정이 있고 똑똑하고 개성이 있는 각기 다른 존재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그들의 관점에서 이해하려 노력한다. '달래'에게 통한 방법이 '억이'에겐 통하지 않을 수 있고, '모모'에게 옳았던 방법이 '막둥이'에게 옳다는 보장은 없다. 어떤 것도 미리 가정하지 말고 동물환자와 개별적 관계를 맺고 이에 맞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