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 'TK 사랑방' 미도다방... 장수 비결은 "상술 아닌 인술"

입력
2022.08.0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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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대구 미도다방
대구 명소...시그니처 메뉴 쌍화차, 전병은 무한 리필
1978년 개업, 45년째 실버세대 '핫 플레이스'
문인, 지식인 교류 장소...벽면 바닥에 기증품 빼곡
복고풍 각광에 젊은 층도 발걸음...소품 협찬도
정인숙 대표 "일터이자 쉼터, 사랑방 역할"

대한민국은 카페 천국이다. 대형 체인점부터 개인이 운영하는 곳까지 대도시는 물론 작은 시골 마을에 이르기까지 카페가 없는 곳을 찾기가 오히려 힘들 정도다. 카페의 원조는 다방이다. 하지만 현대식 카페에 밀려 이제 전통식 다방을 찾아가는 건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만큼 어려운 일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도 전통 다방의 명맥을 잇는 곳이 아직 적게나마 남아 있다. 대구에서 40년 넘게 학자와 문인, 퇴직 공무원 등 각계각층 인사들이 단골로 찾는 미도다방도 그런 곳이다.

미도다방은 진골목에 있다. '길다'의 경상도 사투리인 '질다'에서 유래됐다. 대구도시철도 1·2호선의 환승역인 반월당역 15번 출구로 나와 떡 골목과 종로거리를 150m 남짓 걷다 보면 좁은 골목길 입구 바닥에 '진골목'이라고 쓰인 이정표를 볼 수 있다. 진골목에서 모시옷과 중절모를 차려입은 어르신들 발걸음을 따라가다 보면 이르는 곳이 미도다방이다.

미도다방은 1978년 12월 대구 중구 덕산동 미도화방 2층에서 처음 문을 열었다. 1991년 진골목으로 이전했고, 2012년 지금의 위치로 이전했다. 경북 청도 출신인 정인숙(69) 대표가 45년째 운영하고 있다.

정 대표는 할아버지가 일본 와세다대학을 졸업할 만큼 개화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아버지의 사업 실패 등으로 생업 전선에 내몰렸다. 지난 1976년 대학 진학도 포기하고 대구의 한 다방에 경리로 월급 3,000원을 받고 취직했다. 다방 경리 일을 하면서 '어르신들의 사랑방을 만들자'는 생각에 직접 차린 게 미도다방이다.

지난 7월 중순 미도다방에 들어서자 벤 이 킹의 '스탠 바이 미'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330㎡ 규모의 다방에는 24개의 테이블에 오색방석 140개가 깔린 소파, 등나무 파티션 등 복고풍 소품으로 가득했다. 설날과 추석 당일만 쉬고 연중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10시까지 문을 열어 놓는 미도다방에는 한복을 입은 정 대표가 직접 손님들을 응대한다. 정 대표는 "80대 어르신들이 젊은 시절을 추억할 수 있도록 당시 유행했던 음악을 많이 틀고 있다"며 "음악 소리도 분위기에 젖어들 수 있도록 조용하게 한다"고 말했다. 대구의 실버세대들이 핫 플레이스로 꼽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과거 전통다방이 으레 그렇듯 미도다방에서도 계란 노른자가 동동 떠 있는 쌍화차가 가장 인기 메뉴다. 당귀와 천궁, 감초 등 18가지 약재를 넣고 6시간 동안 끓여낸 약차에 호두 등 견과류와 조청을 넣어 고소하고 달콤한 맛을 더했다. 한 잔에 5,000원인 쌍화차를 주문하면 부채모양 전병 등 간식이 무제한으로 제공된다. 16가지 메뉴 중 가장 비싼 건 7,000원짜리 빙수다. 주머니가 얇은 손님들을 위해 2,500원짜리 원두커피도 준비돼 있다.

다방 벽면과 바닥에 빼곡한 그림과 글씨, 수석 등은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더 강조하는 소품들이다. 40년 넘게 미도다방을 방문했던 단골 손님들이 기증한 것이다. 노씨중앙종친회 노서구(85) 부회장은 한국전쟁 당시 사진을 캔버스에 옮긴 '담배 피우는 양반'을 기증했다. 그는 "지난해 인근 화실에서 그린 그림에서 물감이 마르기도 전에 다방에 기증했다"며 "어릴 적 우리 어르신들을 기억하기 위해 그렸다"고 말했다.

미도다방 단골 중에는 유림단체 회원들이 적지 않다. 유림단체의 임원 모임을 끝내고 다방을 찾은 김시황(85) 성균관석전교육원장은 "대구는 물론 경북 의성과 안동, 경주 등 인근에서 유가의 후손, 문중 임원, 학자 등 지식인 중 미도다방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유림단체 회원들까지 모인 자리에서 인사법은 자신의 문중과 조상, 몇 대손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들은 미도다방에서 다른 집안 자손과 사귀는 '세의'(世誼)를 실천하고 있었다. 조병기(66) 횡성조씨대종회장은 "미도다방은 온갖 문중과 유림이 교류하는 장소"라며 "처신에 각별히 신경쓰고 타인을 존중하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진정한 손님이 되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유림회원들이 자연스럽게 미도다방의 단골이 된 이유는 정 대표의 과거와 무관치 않다. 정 대표는 20세 때 대구향교에서 대구 출신 유학자 소원 이수락 선생에게 사서삼경을 배웠다. 31세 때는 그에게서 혜정(暳晶)이라는 호까지 받았다. 그가 한복을 평생 고집하는 것도 어릴 적 할아버지와 유학 교육의 영향이 크다. 정 대표는 "다방을 찾는 어르신들께서 하대하지 않고 '정 여사'라고 존중해 주시기 때문에 돈독한 관계가 형성됐다"며 "당대의 학자, 변호사, 의사 등 지식인이 은퇴한 이후에도 다방을 찾기 때문에 늘 처신에 신경 쓰고 있다"고 말했다.


미도다방의 독특한 분위기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타고 젊은 층에게도 빠르게 퍼지고 있다. 방명록이 된 다방 구석의 화이트보드에 남겨진 19학번 대학생들의 방문기가 이를 확인해 준다. 정 대표는 "시간이 지날수록 젊은 손님들, 특히 역사와 문화를 공부하는 학생들이 많이 찾고 있다"며 "복고적인 분위기에서 쌍화차를 마실 수 있는 곳이 얼마 남지 않은 이유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도다방의 배경과 소품도 점점 입소문을 타고 있다. 한 방송국에서는 미도다방에서 드라마 소품을 구해 갔다. 1987년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 촬영에 필요한 등나무 파티션을 빌려 갔다. 정 대표는 가로 150㎝, 세로 60㎝인 등나무 파티션 8개를 방송국에 무상으로 대여해 줬다. 방송국에서는 협찬사 이름에 '대구 미도다방'을 꼭 넣겠다는 약속도 잊지 않았다. 지난달에는 한 신혼부부가 결혼사진을 미도다방에서 찍었다. 연출도 필요 없었다. 턱시도와 드레스를 입은 부부가 꽃 몇 송이만을 들고 평생을 간직할 사진을 미도다방에서 찍은 것이다.

40년 넘는 시간 동안 미도다방을 지켜 온 정 대표에게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힘든 시련이었다. 하지만 정 대표는 단골 손님들의 관심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코로나19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어느 날, 오전 9시에 문을 열던 정 대표가 1시간 정도 늦자 단골 손님이 전화로 "다방 문이 아직 닫혀 있는데 무슨 일이 있느냐"라며 걱정을 했다고 한다.

45년간 미도다방을 지켜 온 정 대표는 여건이 허락하는 한 50년, 60년을 계속 이어갈 생각이다. 정 대표는 "다방이 곧 일터이자 쉼터고 어르신들의 사랑방"이라며 "앞으로도 매일 아침 9시면 어김없이 미도다방의 문은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 류수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