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불 정치

입력
2022.07.26 18: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산불 진화에 ‘맞불’만큼 효과적인 것도 드물다. 미국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유명한 세쿼이어 숲도 맞불로 화마를 피할 수 있었다. 이달 두 차례 산불에서 먼저 진화된 워시번 산불은 매리포사 그로브(숲)까지 접근했다. 이곳의 수령 2,000년이 넘는 그리즐리 자이언트는 그 아래서 캠핑한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세상 끝까지 보호하겠다고 한 거목이다. 다행히 산불은 경계선에서 약해져 불길이 숲으로 유입되진 않았다. 바람이 방향을 튼 운도 작용했으나 생태학자들은 예방 맞불 덕에 불길이 잡혔다고 한다.

□ 요세미티 공원은 1970년대 이후 예방 산불을 놓고 있다. 도넛 모양의 고의 산불로 불쏘시개를 미리 없애 진짜 위기 때 불길 유입을 막는 원리다. 2015년 이후 산불로 거대 세쿼이어 20% 가까이가 소실됐지만 예방 맞불이 잘된 지역 피해는 적었다. 맞불이 의도한 효과만 가져오는 건 아니다. 올 4월 뉴멕시코주에선 맞불로 주 역사상 최대인 서울 면적 두 배가 불탔다. 이에 연방산림청은 미 전역에 일시 맞불 금지령을 내렸다.

□ 맞불이 산불진화에 이용되기까지 아픔도 적지 않았다. 1949년 몬태나주에서 발생한 만굴치 산불은 참화였다. 당시 소방대장 와그너 닷지는 엄청난 불길이 뒤쫓아오는 위기의 순간 맞불을 놓았다. 그러면서 그 불 속으로 뛰어들라고 했으나 따르는 대원들은 없었다. 결국 닷지 외에 생경한 맞불을 믿지 않은 대원 13명은 시신으로 발견됐다. 만굴치 사건은 리더가 조직원을 납득시키지 못하고 명령만 내릴 때, 변화의 순간에 다르게 생각하지 못할 때 일어나는 비극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 우리 정치에 맞불 놓기가 한창이다. 전·현직 대통령 사저의 맞불 집회, 경제 실패론에 전 정부 실정론, 측근 불공정 인사에 공공기관 알박기 인사, 경찰 쿠데타에 반쿠데타 등 맞불 여론전이다. 내가 나쁘다면 너도 똑같다는 것인데 정쟁의 소화방식으로 자리 잡은 양상이다. 정치 맞불 역시 불길을 잡기 어려울 때 재난을 막는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중간 지대를 불태워 자기 진영, 자기 세력을 보호하는 맞불 정치는 중도 포기와 같다. 바람이 거센 시점에 맞불을 놓으면 불길이 어디로 갈지 알 수 없다.

이태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