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의 초입 = 불균형의 시작

입력
2022.07.27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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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경기는 내리막을 향해 달린다. 성장 둔화(slowdown)에 그칠지, 마이너스 성장을 연속 기록하는 침체(recession)까지 갈지, 그도 아니면 2000년대 후반처럼 대침체(Great Recession) 수준에 이를 것인지 알 수 없다. 불황의 얼굴은 아직 보이지 않지만, 어쨌든 하강은 기정사실이다.

불황의 초입. 다들 저기 다가오는 터널 안에서 어두움과 배고픔을 어떻게 이겨낼까 걱정한다. 버틸 방도를 찾는 게 우선이겠지만, 지금 꼭 따로 염두에 둬야 할 일도 있다. 터널 속에선 제대로 보이지 않고 생각할 겨를도 없기에, 지금 해야 한다.


돌이켜 보면 불황은 자산과 소득의 불평등을 확대하고 고착화하는 경향이 강했다. 물론 전쟁, 역병, 혁명, 국가의 실패 같은 초대형 위기는 상류층의 경제 기반마저 무너뜨려 빈부격차를 줄이는 결과를 낳기도 했지만(발터 샤이델 ‘불평등의 역사’), 통상 경기 하강은 분배에 부정적 영향을 줬다.

먼저 자산시장. 불황엔 핵심 자산보다 주변부 자산이 더 취약하다. 강남 등 핵심지역 부동산은 그나마 버티겠지만, 수년간 조바심(영끌 열풍)과 기대감 때문에 급등했던 일부 지역 집값은 상승분을 꽤나 반납할 것이다. 금융자산도 그렇다. 청년층 등이 선호했던 암호화폐의 추락 속도는 중산ㆍ부유층의 주요 재테크 수단인 주식ㆍ채권의 가치 하락보다 빠르다.

불황엔 소득 격차도 커진다. 노동시장에선 비정규직이나 영세 서비스업 등 주변부부터 감원이 시작되는 반면, 고소득 전문직이나 대기업 종사자들은 상대적으로 높은 고용 안정성을 누리기 때문이다. 이번 불황이 인플레이션과 함께 왔다는 점도 문제인데, 중산층 이상은 실물자산으로 인플레를 헤지(hedge)하지만 저소득층은 생필품 물가상승을 고스란히 감내해야 한다.

경기가 바닥을 찍고 올라올 때도 불평등이 심해질 수 있다. 이매뉴얼 사에즈 UC버클리대 교수는 미국이 대침체를 극복해 가던 2009~2012년 소득 증가분의 91%가 상위 1%에 집중됐다는 점을 밝혀냈다. 단 1%가 경기회복 과실을 독식한 거다.


이렇게 여러 측면에서 불황은 불평등을 키운다. 그렇기에, 불황의 초입에 임기를 시작한 새 정부의 조세ㆍ재정ㆍ금융정책에는, 분배에 미칠 영향이 각별히 고려될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첫 세제개편안에 철 지난 낙수이론이 ‘경제활력 제고’란 이름으로 웅크리고 있다는 점은 걱정스럽다. 반대로, 여론의 질타를 받고는 있지만 금융당국이 영세 소상공인과 청년 등 취약차주에 대한 지원을 선제적으로 마련 중이라는 점은 오히려 높이 평가할 부분이다.

부의 불균형 확대가 나라 전체에 미치는 악영향은 자명하다. 빈부격차 심화는 개인의 불행을 넘어 사회통합을 갉아먹고,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사회적 비용도 늘린다. 불평등이 제도 안에서 교정되지 않으면, 심한 경우 폭력적인 과정(혁명ㆍ내전 등)을 통해 해소됐던 적도 빈번했다.

그래서, 지금은 쓸모없어 보일 수 있지만, 저소득층이나 청년층 등 불황에 취약한 계층이 사다리에서 미끄러질 가능성이 높은 지점 곳곳에 에어매트를 미리 깔아둘 필요가 있다. 정부가 분배에 미칠 정책 효과를 고려치 않고 불황 타개에만 힘 쏟는다면, 몇 년 후 우리는 지금보다 경제적으로 더 불평등한 세상과 마주해야 할 것이다.

이영창 산업2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