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서 아마존 다음으로 큰 열대우림을 보유한 '콩고 분지'가 누더기가 될 위기에 처했다. 콩고민주공화국(민주콩고) 정부가 분지에 위치한 석유·가스 매장지들을 이번 주 경매에 부치기로 했기 때문이다. 석유·가스 채굴이 실제 이뤄지면 치명적인 환경 파괴가 예상된다. 경매 대상 지역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비룽가 국립공원도 있다. 그러나 경제난과 기근에 시달리는 민주콩고는 "국내 상황이 우선"이라며 열대우림 매각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2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 등은 민주콩고가 오는 28, 29일 경매에 넘길 석유·가스 매장지가 30곳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민주콩고는 올해 5월 매장지 16곳의 경매 홍보 영상을 정부 트위터에 올리며 세일즈를 시작했다. 미국과 프랑스의 글로벌 석유 기업인 셰브론과 토털에너지를 태그해 매각 의사를 타진하기도 했다. 민주콩고가 새로 내놓은 경매지 중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비룽가 국립공원과 겹치는 지역도 있다.
지구의 '탄소 저장고'로 불리는 이탄지(석탄의 한 종류인 이탄이 수천 년에 걸쳐 퇴적된 지역)도 경매 대상에 포함됐다. 민주콩고 북서쪽 '큐벳 센트럴' 이탄지는 전 세계가 화석연료 사용으로 배출하는 탄소 양의 3년 치에 맞먹는 탄소를 축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지역을 개발하면 지구온난화가 더 급속히 악화할 게 분명하다고 우려한다. 수전 페이지 영국 레스터대 지질학 교수는 "(이탄지를 개발하면) 탄소 배출량이 급격히 늘어난다"며 "지구온난화를 심화시키는 '티핑포인트'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민주콩고가 처음부터 환경보호를 포기한 건 아니다. 지난해 11월 제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열대우림 보호를 위한 신규 협정'에 서명했다. 5년간 국제사회로부터 5억 달러(약 6,500억 원)를 지원받는 대신 2031년까지 산림 파괴를 멈추고 토양 회복에 힘쓰겠다고 약속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상황이 급변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동맹이 러시아의 전쟁 자금을 말리기 위해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을 제한하면서 에너지 가격이 치솟았다. 에너지 대란은 민주콩고가 석유 매장지를 팔아 돈을 벌 절호의 기회로 작용했다. 민주콩고는 2018년 기준 인구의 75%인 600만 명이 빈곤층에 해당할 정도로 경제위기가 심각하다. 주식량인 밀 수입을 러시아·우크라이나에 의존해온 터라 기근도 심해졌다.
디디에 부딤부 민주콩고 탄화수소부 장관이 환경 파괴 우려를 인정하면서도 "심각한 불안정과 기근 속에 사는 국민들에 대해 우선적인 책임이 있다"고 경매 의지를 굽히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민주콩고 정부는 석유 매장지를 적극 개발하면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절반 수준인 연간 320억 달러(약 42조 원) 규모의 수입을 올릴 수 있다고 추산했다.
서방 정부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열대우림이 석유 기업에 넘어가면 파괴될 게 명확하지만, 이미 화석연료를 이용해 경제성장을 이룬 입장에서 환경보호를 강요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잭 골드스미스 영국 국제환경부 장관은 "이탄지에서의 석유 채굴이 매우 걱정되지만, 지역 주민들이 자원의 수혜자가 돼야 한다는 데 깊이 동의한다"며 "생태계 보호와 석유·가스 부문 개혁 방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민주콩고 정부와 계속 협력하겠다"고 말했다고 영국 가디언은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