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국가 비상사태 선포를 고려한다고 존 케리 미국 대통령 기후특사가 밝혔다. 미국 50개 주(州) 가운데 절반 이상인 28개주에 폭염주의보가 발령되고 1억5,000만 명이 폭염 영향권에 놓이면서, 더 이상 손을 놓을 수 없다는 위기감이 커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케리 특사는 24일(현지시간) 영국 BBC방송 인터뷰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행정명령을 포함해 가용 가능한 모든 도구를 사용할 준비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탄소 기반 에너지를 대체하는 데 바이든 대통령만큼 열정적인 사람은 없다”며 비상사태 선포가 재생에너지 정책을 추진하는 데 필요한 권한을 부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상사태 선포는 미국 헌법에 명시된 대통령 권한이다. 천재지변이나 전쟁 위기 등 국가적 비상시에 정부가 신속히 대처해야 할 필요성이 있을 때 할 수 있다. 비상사태가 내려지면, 행정명령 등 대통령 권한만으로 관련 예산을 조달해 재생에너지 확대를 가속하거나 원유와 천연가스 시추를 차단할 법적 근거로 활용할 수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비상사태 선포를 고려하는 것은 야심 차게 추진한 기후변화 대응 법안이 1년 넘는 협상 끝에 최근 의회에서 좌초했기 때문이다. 법안 처리에 사실상 캐스팅보트를 쥔 조 맨친 민주당 상원 의원이 물가상승(인플레이션)을 이유로 ‘더 나은 재건'(BBB) 법안’에 반대하면서 의회 입법을 통한 예산 확보는 좌초된 상황이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정확히 양분하고 있는 상원 구성상 공화당이 반대할 경우 민주당에서 한 명이라도 이탈하면 법안 처리는 불가능하다. 비상사태 선포는 사실상 예산마련 ‘우회로’인 셈이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20일 비상사태를 선포할거라는 외신 보도가 나왔지만, 23억 달러(약 3조176억 원) 규모의 기후 대응 인프라 투자 대책을 발표하데 그쳤다. 그러나 이상 기온이 미국의 폭염 기록을 연일 갈아치우는 등 기후변화가 말 그대로 ‘위기’로 다가온 만큼 비상사태 선포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이날 케리 특사의 발언은 조만간 백악관이 보다 전향적인 기후 대응 칼을 빼 들 것이라는 신호로 해석된다.
케리 특사는 “우리는 충분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고 너무 느리게 나아가고 있다. 기후위기에 따른 최악의 결과를 피하기에는 너무 뒤처져있다”고 말했다. 이어 “온 의회가 기후변화를 막는데 필요한 일부 조치를 전적으로 채택하지 않는 상황은 이상적이지 않다”며 “이래서는 미국이 기후변화에 단일대오로 대응하는 모습을 세상에 보여줄 수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