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들이 51일 만에 파업을 종료했지만 노동계는 언제든 타오를 수 있는 '불씨'가 여전하다고 판단한다. 조선업계의 고질적인 원청-하청-재하청 구조에는 손도 못 댔기 때문이다. 노동계에서는 '진짜 사장'인 원청과 하청 노동자 간 중층적 교섭 모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4일 노동계에 따르면, 이번 파업의 의의는 조선업계의 뿌리 깊은 다단계 하청구조의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는 정도다. 하도급 노동자들의 저임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구조적 변화까지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노동자들이 협상 대상으로 콕 집은 원청 대우조선은 "권한이 없다"며 협상 테이블에도 나오지 않았다. 상식적으로는 하청 노동자들과 고용 계약을 맺은 하청업체가 협상 주체가 돼야 하지만 조선업계의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조선업계는 특성상 수주·건조량에 따라 업무량 차이가 커 일이 몰릴 때마다 사람을 모아 쓴다. 주로 원청 조선소가 1차 협력사에 하청을 주고, 이 하청업체들이 공정별로 일명 물량팀에 재하청을 주는 구조다. 아래 단계로 가면 갈수록 임금은 줄고 최하층에 있는 물량팀 노동자들은 줄곧 저임금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원청인 대우조선이 정해주는 대금을 받아 노동자에게 지급하는 하청업체는 이렇다 할 권한 자체가 없다. 하지만 이번 파업의 핵심인 임금인상 등 노동조건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원청 대우조선은 뒤로 빠진 채 파업은 결국 하청업체 협의회와 노동자 간 교섭으로 끝났다. 대우조선이 경영상의 이유로 하청업체에 주는 대금을 줄이거나 한다면 노동자들의 저임금 문제와 파업 등은 언제고 반복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노동 전문가들은 원청 사용자가 하청 노동자와의 단체교섭을 피할 수 없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택배노조와 단체교섭을 하라고 판정한 CJ대한통운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최근 법원은 노동조합법상 사용자를 '근로계약 체결 대상'이 아니라 '실질적 지배·결정할 지위가 있는지 여부'로 보는 추세다.
이용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장은 "사용자 개념을 넓게 봐야 한다는 유권해석은 이미 정리됐지만 (명확하게) 사용자 개념을 확대하도록 법을 개정하는 게 시급한 과제"라면서 "아울러 만연한 다단계 하도급을 규제할 수 있는 장치도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원청과 하청 사용자, 노조, 정부 등이 한꺼번에 참여하는 중층적 교섭을 제도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김종진 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원하청 구조가 뿌리 깊게 자리 잡은 곳에서는 지불 능력이 적은 하청업체만을 대상으로 교섭하게 하지 말고 중층적 교섭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면서 "임금이나 노동조건 등은 원청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는 것을 인정하고, 노사정의 중층적 대화를 통해 임금·고용구조 등에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